N.EX.T –
Home (1992) |
90/100 Feb 19, 2023 |
![Home](/img2/di.png)
주위에 음악을 좀 듣는 친구들이 N.EX.T와 신해철에 빠져있을 때 저는 그다지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를 마왕, 천재로 떠 받는 그 특유의 교조적인 팬덤이 거북해서였습니다. (서태지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홍대병 중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앨범을 따로 소장하지 않았고 대신 대중 매체(TV)와 친구에게서 빌려 들은 음반, 복사한 카세트테이프를 통해서 이들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생각보다도 (90년대) 신해철의 음악에 익숙하고 그것을 좋아했고, 이제는 좀 그리워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중고장터를 통 해 신해철의 앨범을 하나 둘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Home](1992)은 예전에 대학생 이모 혹은 삼촌의 카세트테이프 복사본으로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복사본이다보니 앨범 부클릿 같은 것도 없어서 몰랐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앨범을 소장하게 된 후에야 이렇게 목가적(앞면) vs. 인더스트리얼(뒷면)의 대립 구조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저는 1번부터 5번 트랙까지는 좋고, 6번부터 10번 트랙까지는 그다지 끌리지 않습니다. 새로운"N" 실험"EX"을 하고자 했던 팀"T" 이름에 걸맞게 전자드럼을 쓸 정도로 전자음악이 전면에(1,3,4번 트랙) 등장합니다. 신해철의 전자음악에 대한 지향은 [노땐쓰](1996)과 [모노크롬](1999)까지 이어집니다.
1번 트랙 [인형의 기사 Part I]은 여러 음성 효과들 때문에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최근에 아이와 롯데월드에 갔었는데, 무섭지 않을 줄 알고 탔던 신밧드의 모험을 무서워하더라구요. 어두컴컴한 분위기와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괴물들이 나타나고... 아마 저희 아이가 신밧드의 모험에서 느꼈던 무서움이나, 제가 어렸을 때 [인형의 기사 Part I]에서 느꼈던 무서움이나 비슷한 성격인 듯합니다. 특히, 그당시 주말의 명화로 봤던 해저 공포영화 [레비아탄]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한 동안 무서운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지금 들으니 80년대 말 90년대 초반 특유의 모더니티의 느낌이 짙어서 좋습니다. 마치 옛날에 먹었던 추억의 음식을 먹는 듯한 느낌입니다.
2번 트랙 [인형의 기사 Part II]는 믿고 듣는 신해철표 가요입니다. 후렴의 가사와 노래가 계속 맴돕니다.
3번 트랙 [도시인]은 시대보정을 해도, 하지 않아도 혁신적이지 않나요? 가사도 귀에 꽃히구요. 덕분에 10살부터 도시인의 팍팍함을 깨달았고, 지금도 아침에 우유 한 잔을 하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각자 걸어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간 중간에 신해철이 "this is the city life"를 외치며 한 바퀴 스핀하는 모습이나 스탠딩 전자 드럼은 꽤 엣지 있고, 꽃게랑 광고는 아방가르드한 충격이었고,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꽤 선전해서 나름 응원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수 년 전 합주를 하다가 우연히 동료랑 같이 즉흥적으로 이 곡을 커버하기도 했습니다. 동료는 드럼을 치고, 저는 키보드를 치고, 둘이서 같이 노래를 부르고, "뚜게뚜게 뚜.뚜.뚜.뚜게바"는 같이 스트레오로 코러스를 넣으면서 깔깔 웃고 놀았네요.
4번 트랙 [Turn Off the T.V.] N.EX.T표 펑키 넘버로 – 후에 [Komerican Blues], [R.U. Ready?], [노바소닉]으로 이어집니다 – 멤버들이 다같이 부르는 그 특유의 코러스 라인이 괜찮습니다.
5번 트랙 [외로움의 거리]는 그냥 보통의 가요라 생각했는데, 32살 어느 초겨울날 신촌에서 홍대, 상수까지 외로움의 거리를 걸으며 아찔한 어지러움을 느끼고 나서야, 이 노래가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여기까지가 Side A입니다. 6번 트랙부터는 Side B로 넘어갑니다. CD음원에서는 1시간 내외의 하나의 흐름으로 곡들이 이어지는 앨범 구조를 가졌으며, 스트리밍 음원에서는 앨범의 의미는 사라지고 싱글 중심으로 음악을 감상한다면, 그 이전 LP와 카세트테이프 시대에는 중간에 앨범의 앞뒤를 뒤집는 행위를 수반한, 전반과 후반의 형태로 앨범의 곡들이 구성됩니다. 즉, 본 앨범에서 Side A는 미래 지향적인 전자음악으로 문을 열고(인형의 기사 Part I), 도시에서의 삶을 살아가며(도시인, Turn Off the T.V. ), 외로움으로 마무리합니다(외로움의 거리).
그리고 Side B로 넘어가 그동안 잊어왔던 가족과 집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그 중심에는 [아버지와 나 Part I]이 있는데, 아버지와의 관계가 현재진행형인 저로서는 듣기가 많이 부담됩니다. 그것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잘 안되는 것이 아버지와의 관계인 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체적으로 Side B의 곡들이 끌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부클릿의 이미지처럼 [Home]은 Side A와 Side B가 서로 대칭을 이루며 변증법을 거쳐 하나의 앨범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대에게]로 대표되는 80년대 후반의 느낌도 남아있고(영원히), 이후 N.EX.T 2집부터 본격화된 전자음악과 밴드지향 음악의 초석도 마련되었습니다. ... See More
2 likes |
N.EX.T –
Lazenca: A Space Rock Opera (1997) |
90/100 Feb 10, 2023 |
![Lazenca: A Space Rock Opera](/img2/di.png)
그런 상상을 해봅니다. 이제는 라젠카의 음악에 걸맞는 영화/애니가 나올 법도 하지 않나요? (옛날의 영혼기병 라젠카는 묻어두구요)
슬램덩크도 만화의 질감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술력이 갖춰질 때까지 25년을 기다려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돌아왔듯, 우리의 라젠카도 이제는 과거에 빈곤했던 문화컨텐츠 상상력과 기획력이 갖추어졌겠다, PSY, BTS, 기생충, 오징어게임을 만들어낸 K-컬쳐의 힘으로 새로운 미디어믹스로 라젠카가 등장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클라이막스에 Lazenca Save Us가 울려퍼지며 라젠카 – 라젠카가 꼭 로봇일 필요는 없지요. 애초에 로봇 장난감을 팔기 위해 로봇 메카 물이 되었다고 하니 – 가 등장하는 모습이 극장에서 펼쳐진다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숨죽이는 마지막 공격만큼 희열을 느끼지 않을가요?
90년대는 코어를 단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외관만 그럴듯한 성장의 정점을 찍었던 시기로 건물도, 경제도, 그리고 영혼기병 라젠카도 무너져내렸습니다. 그런 과도기적인 시기에 미래 우주 디스토피아에서 펼쳐진 K-락오페라는 시대의 한계에 갇혔으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려 했습니다. 그러한 미완의 도전들이 유산으로 이어져 오늘의 K-컬쳐를 이루었습니다. ... See More
1 like |
Thursday –
War All the Time (2003) |
95/100 Jan 19, 2023 |
![War All the Time](/img2/di.png)
20년 전에는 제 옆에 앉아있는 그 애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며 좀 더 비싼 내가 되긴 위한 전쟁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오늘날은 전쟁에서 자유로울까요? 그럴리가요. 이제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루하루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한 전쟁은 항상 있습니다. War All The Time.
Thursday의 음악은 다듬어지지 않은 자신의 순수와 뜨거움을 내지릅니다. 프론트맨 Geoff Rickly는 노동(1번 트랙), 섹슈얼리티(4번 트랙), 성장(9번 트랙) 등 현대 사회에서 소외를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온몸으로 울부짖으며 표출합니다. 프론트맨 뿐만 아니라 스크리밍 코러스, 기타, 베이스, 드럼 또한 각자의 소리와 움직임들이 무대와 소리 공간에 터져나오려 합니다.
앨범의 첫 곡 [For the Workforce, Drowning] 부터 쉴틈없이 거칠게 몰아칩니다. 그리고 2개의 트랙을 지나, 이 앨범의 타이틀곡 [Signals Over the Air]은 Thursday의 작법의 정점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디스코그라피를 가장 대표하는 대중적으로도 먹힌 명곡입니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곡의 구조, 트윈기타의 화음, 같이 따라부를 수 있는 후렴구(when you say my name....), 적절하게 터져나오는 스크리밍 코러스와 드럼과 베이스의 리듬 등이 모범적으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앨범 제목이기도 한 9번 트랙 [War All the Time]은 Thursday 멤버들이 유년기부터 청년까지 겪어왔던 성장의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노래합니다. 얼핏 반전 노래로 짐작되나, 노래에서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전쟁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경험에 대한 것입니다. 단, 이 앨범이 발매된 20년 전은 911과 미국-아프간 전쟁의 그늘이 졌던 시대로, 이 곡을 거대담론으로서의 전쟁으로 확장해서 수용해도 문제는 없을 듯 싶습니다. 예술의 해석은 독자의 몫이니까요. 20년이 지난 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우크라이나 메탈 뮤지션들은 이곡을 커버하며 러시아의 침공에 저항하고 우크라이나 군대를 위한 후원금을 모금했습니다(youtu.be/gM_jL8f09DM). War All The Time.
1, 4, 9번 트랙 외에는 필링트랙의 성격이 강해서 완성도가 뛰어난 앨범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매우 뛰어난 싱글 3곡만으로도 하나의 정규 앨범을 찢어놓기에는 충분합니다. 본작 War All the Time(2003)은 전작 Full Collapse(2001)에서 구축한 90년대 말 하드코어의 끝과 00년대 이모/스크리모의 시작을 성공적으로 – 더 헤비해지고 더 성숙한 방향으로 – 이어갔습니다. 이는 다음 앨범 A City by the Light Divided(2006)까지 이어집니다. ... See More
|
Sad Legend –
The Revenge of Soul (2009) |
90/100 Oct 17, 2022 |
![The Revenge of Soul](/img2/di.png)
작곡만 보자면 1집보다 더 입체적이고 다채로워졌으며, 음질도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음악 청취의 감동은 곡의 수준과 녹음의 질에 항상 비례하지 않습니다. 부클릿에서 확인할 수 있듯, 1집의 화자는 "영혼을 잃어"버리고 마치 밤안개와 같은 "절망"과 "한"에 둘러싸인 불투명한 존재였다면, 2집의 화자는 "영혼의 복수"를 집행하는 자로서 이야기의 전면에 선명하게 등장했습니다. 부클릿의 그림도, 음질도, 노랫말도, 노래도 모든 면에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러한 선명함이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고 1집의 카타르시스보다는 못미칠지언정, 그래도 1집에서 정주하지 않고 다른 색깔로 "sad metal"을 그리려 한 점을 높게 평가합니다. Sad Legend의 명성에 결코 부끄럽지 않을 수작이며, 1집과 차별화된 또 다른 앨범이 있어 소중합니다. Sad Legend의 여정은 두 장의 앨범, 듀올로지(duology)로 끝났습니다만, 유수의 밴드가 발표한 여러 장의 앨범보다도 더 귀중한 두 장의 앨범입니다. ... See More
3 likes |
Pain of Salvation –
Panther (2020) |
85/100 Oct 9, 2022 |
![Panther](/img2/di.png)
결국 Daniel Gildenlow 원톱 체제로 회귀했습니다. 2013년 Pain of Salvation은 Daniel Gildenlow와 견줄만한 음악적 역량과 비쥬얼을 갖춘 젊은피 Ragnar Zolberg를 영입하였습니다. 물론 Pain of Salvation은 Daniel Gildenlow의, 그에 의한, 그를 위한 팀입니다만, 한 동안 라이브 무대 프론트맨으로서의 역할이나 작곡에서 상당한 지분을 Ragnar Zolberg에게 배분하였습니다. Falling Home (2014), Remedy Lane Re:Lived (2016), In the Passing Light of Day (2017)에서 이 둘은 투탑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전방공격수(Daniel Gildenlow)와 섀도우공격수(Ragnar Zolberg)의 균형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왕이 둘일 순 없고, 2017년 Ragnar Zolberg는 탈퇴하고 Daniel Gildenlow 원탑인 구체제 로 복귀했고, 그의 충실한 심복 Johan Hallgren이 돌아왔습니다. 그 결과물이 Panther (2020)입니다.
40대 후반에 접어든 Daniel Gildenlow는 – 음악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 계속 젊으려 합니다. 과거 전성기 때의 음악과 함께 노화하기보다는, 음악적으로 새로움을 향한 욕망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리듬은 더욱 창의적이며, 신디 패드와 아르페지에이터가 사운드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Accelerator 뮤비와 부클릿에서 볼 수 있듯, 자신의 신체를 단련하고 그것을 과시할 정도로 신체적으로도 젊으려 합니다.
그렇지만 좀 힘이 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3번 트랙 Restless Boy는 이번 앨범의 대표곡으로 Pain of Salvation에 기대하는 새로움과 감정의 폭발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전반부에 천천히 긴장감을 끌어올리더니, 후반부의 비트는 마치 맨주먹으로 두들기듯 둔탁한 타격감이 느껴질 정도로 폭력성과 혼란함이 고조됩니다. 그렇게 "역시 이것이 Pain of Salvation이지" 하며 감탄하고 있는데, "어? 벌써 끝이야?" 갑자기 곡이 끝나네요? 이들의 전성기 때 음악을 떠올려보면, 이정도까지 분위기를 끌어올렸으면, 다른 프레이즈로 넘어가고 한 번 완급 조절을 했다가 다시 한번 치고 올라가서 7~8분 쯤에 곡을 끝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Restless Boy의 짧은 러닝타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앨범 전체적으로 곡의 시작을 풀어가는 방식은 준수한데, 곡의 구성을 좀 더 입체적이고 끌고갈만한 여지가 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즉, 여전히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나 그 힘이 좀 딸립니다.
이래나 저래나 Daniel Gildenlow의 팬으로서 그가 하는 모든 시도들이 좋습니다. 인간의 창의성은 한계가 있고, 노화로 생기는 관성을 이겨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 새롭고 젊기 위해 애를 씁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Daniel Gildenlow 하고 싶은 거 다해!! ... See More
2 lik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