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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zum - Filosofem cover art
Artist
Album (1996)
TypeAlbum (Studio full-length)
GenresAtmospheric Black Metal

Filosofem Reviews

  (7)
Reviewer :  level 6   100/100
Date : 
바르그 비케르네스의 철학과 같은 앨범이자 블랙메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앨범중 하나이다.

첫 트랙 Dunkelheit로 포문을 열어 느릿한 템포에 단순할수 있는 코드 진행이지만 여기에 헬리콥터 마이크?로 녹음한 조악한 음질의 보컬 시종일간 어둠을 부르짖는 가사와 밋밋할수있는 곡에 신디사이저를 더하여 atmospheric함을 입혀주었다.

두번째 트랙 Jesus Tod 말이 필요한가 블랙메탈의 바이블과도 같은 곡이다. 영양가잇는 리프에 반복적인 미학을 들려주는 사악한 트랙이다. 하지만 이 트랙으로 인해 온갖 똥품을 잡으며 반복적이고 음질 구리면 다 사악하고 좋은줄알고 구린 리프를 시종일간 반복하는 똥블랙메탈 밴드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세번째 트랙 Erblicket die Töchter des Firmaments 첫 트랙과 마찬가지로 미드템포에 단순한 코드 진행에 어디 동굴같은 곳에서 울리는것만 같은 스네어 소리에 자기혐오적이고 우울한 가사를 주제로 곡 분위기에 압도당해 한기를 느끼게 된다 아마 세번째 트랙과 네번째 트랙에 많은 영향을 받아 자살블랙이 탄생하는데 기여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네번째 트랙 Gebrechlichkeit I 더욱 처절해진 기타 사운드에 우울한 신디사이저소리에 맞춰 세번째 트랙 가사에서의 노화로 인해 우울함과 함께 생이 끝나가 여정을 마친다는 의미같다.

다섯번쨰 트랙 Rundgang um die transzendentale Säule der Singularität으로 인해 많이 까이기 시작하는 앨범인데 그럴만 하다 생각한다. 죽음과 동시에 북유럽에 숲을 바라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몽환적인 앰비언트 사운드에 25분 넘게 거의 앨범 절반을 담당하는 트랙이다. 개인적으로 곡의 마지막에 위치 시킨건 분위기에 맞게 잘 맞았다 생각하지만 한 10분정도만 했었어도
괜찮았을것 같다.

여섯번째 Gebrechlichkeit II은 네번째 트랙에서 보컬 대신 어디 나무집이 무너지는거 같은 소리를 입혀놨다. 개인적으로 굳이 왜 넣었는지 모르겠다 . 차라리 다섯번쨰 트랙에서 마무리 시키는게 훨씬 좋았을거라 생각한다
Reviewer :  level 12   55/100
Date : 
This may be a bit brash, but I expected a lauded album made by a once nazi, church burning murderer to be a bit more exciting.

I wasn’t a big fan of Burzum’s other albums, but some tracks sat very well with me, and I could see the evolution of the heavily Ambient/Dungeon Synth-leaning Atmoblack developing. The problem was, the styles weren’t being mixed very well, we’d more so get one and then the other. I was expecting Filosofem – considered Burzum’s masterpiece and one of the greatest Atmospheric Black Metal albums of all time – to finally nail that style he’d been developing.

Aaaand no, he drops the ball for me. The tracks are incredibly boring and repetitive, no riffs to speak of, the guitar fuzz being so abrasive and poorly mixed that actual notes are mostly indiscernible. The ambient part has barely been incorporated into the music, with minimal, repetitive synthed notes playing a very minor background role. Once again, the only track that fully incorporates Ambient is devoid of any Metal at all, making this another failure to truly integrate both styles full and well into a single song.

The vocals, are atrocious, in fact the mixing on every front is so bad that nothing really sounds good, and this coming from someone who can enjoy artists like Bathory with no issue. This is considered depressive, melancholic, music… doesn’t really sound that way to me, it’s mostly just droning on and on without evoking much at all.

However, that’s not to say it’s truly a bad album, it’s just immensely disappointing. The compositions are decent, and the Ambient melodies that can be heard are quite nice. The repetitiveness is not so much an issue and does work well with the atmospheric soundscapes created. It’s decent background music if the horrible production isn’t enough to ruin the experience. But that’s where my compliments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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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r :  level 10   60/100
Date : 
신기하게도 들을 때마다 입장이 바뀌는 앨범이다. 앞으로도 계속 바뀔 예정이긴 하지만, 이 글이 현 시점의 내 의견이다. 이 앨범의 실험적인 부분을 인정하게 되면 그때 가서 또 우주명작으로 받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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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번 트랙, 특히 2번 트랙은 '이거 좋다' 라는 말을 더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그것에 감히 반박할 수 없는 음악성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100%을 꽉 채우는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Jesus' Tod는 완벽에 수렴한다. 이 트랙 하나로도 이 앨범은 가치가 있다.

이 트랙들의 주목할만한 특징으로는 버줌 본인을 포함 다른 위대한 밴드들(메이헴, 엠페러, 임모탈, 고르고로쓰 등등.. 많기도 하다.)이 정립한 블랙 메탈의 음악적 특징과 그에 따라 도출되는 감성/감정을 대부분 배제하며 궁극의 미니멀리즘을 달성한다는 점이다. 장르의 특성 상 이런 시도를 할 구상을 하고, 그 시도가 성공했다는 사실 만으로 버줌은 대단한 천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앨범의 나머지 절반이 힘이 쭉쭉 빠진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메킹 형님들의 빅-데이타, Track ratings 기반입니다.)

문제의 트랙들의 목적은 명확한 듯 싶다. 제목을 통해 유추해보면 4, 6번은 노화와 그에 따른 죽음, 다시금 그 결과로 이어지는 영원한 어둠이라는 관념에 대한 묘사이고. 5번은 거대하고 초월적인 기둥 주위를 돌고 도는 행동을 묘사하려 하는 것 같다.

문제는 그것들이 음악을 통해 청자에게 전달이 된다면 모를까, 그 긴 시간 동안 진행되면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음악을 통해 나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음악에 집중하자니 너무 지루하고, 그렇다고 명상하듯 흘려보내자니 음악을 듣지 않는 것과도 같은데. 계속 반복되는 '無'의 상태가 앨범의 후반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괘씸하다고 생각했다.

어둠을 있는 그대로 담았다고 주장하려 한다면 난 그것을 근본적으로 틀린 시도라고 지적하고 싶다. 우리가 '어둠'이라는 상태를 떠올릴 때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 상태가 안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앨범의 후반부에서 느낀 것은 그런 두려움이나 신비로움보다는 공허함에 가깝다. 그리고 공허한 음악을 마주하는 것은 시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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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r :  level 20   100/100
Date : 
다른 빈말이 필요없이 Burzum이 Burzum한 앨범이다.

Varg는 언제나 자신의 머리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그려내었고 그 안에서 자신의 민족성과 그 북구의 대지와 하늘이 빚어내는 옛 이야기를 노래했다. (그가 왜 Theodor Kittelsen의 그림을 줄기차게 그의 앨범들에서 고집했는지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이 4집에 이르러서 그는 1~3집에서 보여주었던 것을 뛰어넘어 당시의 블랙메탈 그 자체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결과물을 내게 된다.

그것을 위해 그는 이 앨범에서 가장 실험적인 선택을 한다.

이 앨범을 가장 거칠게 녹음하기위해 Varg는 기타앰프를 사용하지 않고 그의 형제가 가진 스테레오 앰프에 오래된 퍼즈페달만 사용했다. 그리고 가능한 최악의 목소리를 내기위해 그리그할렌의 담당자를 달달 볶아 고물상에서 월남전때 쓰던 헬리콥터의 조종사용 헤드셋을 찾아내게 만들었다.

그의 다른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이 앨범도 각 파트가 모두 원테이크로 녹음되어졌다. (이 4집까지의 그의 결과물중 원테이크로 녹음되지 않은 곡은 단 두곡으로 Hvis Lyset Tar Oss의 타이틀 트랙은 기술상의 문제로 드럼을 두 번 녹음해야 했고 이 4집의 Jesus Tod의 경우는 손가락이 피곤해서 베이스 트랙을 다시 녹음했다고 한다.)

각 곡들을 자연스럽게 듣다보면 우리는 그의 음악적 역량이 블랙메탈의 기본적 바탕 속에서 그만이 가지고 있는 캔버스 위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붓터치로 너무나 다양하고 또 입체적으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것들을 통해 그 날카로운 시선 및 냉소와 더불어 소박하지만 매우 진중했고, 또 아름다웠던 옛문화에 대한 그의 헌사를 볼 수 있다. 아울러 그의 머리 속에서 공명되어 울리는 하나의 정신적 최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나기도 한다.

그는 이 앨범에서 자신의 종교관, 세계관, 정신의 방향, 민족성과 전통성(그의 말 : Our European Paganism was called simply "the Tradition" or "the Custom" (Norse seiðr)에 대한 생각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 이만치나 친절하게 그의 '모든 것'을 설명한 앨범이 이전에, 그리고 이후에 있었던가?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이 앨범은 감옥 안에서 녹음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블랙메탈의 큰 '사건' 이전에 완성이 되어 있었으며, 그는 이것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긴 시간의 감금 전에 자신의 두뇌를 갈무리하고 '옮겨놓을' 준비를 마친 것이다.

무슨 소리냐고? 애시당초 청자는 이 앨범의 타이틀이 왜 Filosofem인지부터 생각하며 이 앨범을 돌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에 대해 나는 -그에게는 꽤나 불쾌하겠지만- 성경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할까 한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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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론적으로 1993년 3월, 17시간만에 녹음된 이 앨범은 Mayhem의 ep와 1집, Darkthrone의 2집과 함께 블랙메탈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앨범이면서 가장 많은 후대의 블랙메탈 밴드들에게 영감을 준 앨범이 되었다.

또한 블랙메탈의 명반을 꼽을 때, Darkthrone과 함께 가장 많은 명반을 그 전당의 리스트에 집어넣은 밴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은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블랙메탈은 이러이러해야 한다', 혹은 '진정한 블랙메탈은 이런 것을 하면 안된다' 같은 것은 이 완벽한 앨범 앞에서는 가장 의미없는 소리일 뿐이다.

'Black Metal is not Black Metal, so to speak. What we today know as Black Metal is something else, something I don't like and something I don't want to be associated with. It's that simple, really. I don't care about the term one bit, and rather than argue that they don't play "true" Black Metal or Black Metal at all, I let the followers keep what they stole, corrupted and twisted in 1992.

I don't want it to describe my music anymore. I play my music the way I want to no matter what we call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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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evolted against death metal in 1991, but what you don't know is that I revolted against trendy Black Metal too, in early 1993, when I recorded "Filosofem". This album was an "anti-trend" album, but as you might know, it ironically became one of the biggest sources of inspiration for the coming so-called Black Metal bands.'

- 그의 인터뷰 中

참고로 그가 생각하고 주장하는 Odalism에 대해 들어보자.

"It's a good term to describe a positive movement, trying to embrace the good in our culture rather than attack the bad of other cultures. Odalism is all about having a positive relationship to your fatherland, the soil you live on and from, the people you are a part of and the culture of your people. It is not like National Socialism, for many reasons, but perhaps first and foremost because it is not socialism in any way, and it could well be adopted by anyone – regardless of race."

*도대체 왜 버줌의 이 앨범에 '자살블랙' 의 시초라는 말이 붙어야 하는지 꽤나 의문이다. 엣모스페릭과 수어사이드는 엄연히 다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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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zum - Filosofem Vinyl Photo by 똘복이
Burzum - Filosofem CD Photo by 똘복이
Reviewer :  level 4   100/100
Date : 
[예술가의 정점, 버줌]

예술은 가상의 영역이고 곧 현실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예술은 현실의 삶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한에서 그 독자적인 의미를 가진다. 삶의 현실과 예술의 가상이 서로 섞이는 한, 삶이 더 이상 진중한 가치를 갖지 못하게 되거나 예술이 삶의 당위를 정당화하는 어용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주관적인 가치가 개입되는 동시에 가치중립적이다. 현실세계의 옳고 그름의 잣대가 예술의 영역에 까지 올바르게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예술은 주관적인 취향의 판단이 내려져야만 개인에게 의미있는 것으로 다가가므로 지극히 가치개입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예술의 이런 본질적 성격을 고찰하여 버줌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버줌, 즉 바르그 비케르네스의 정치 이데올로기, 사회적 이상향이 논리적으로 완결성있으며, 또 진정으로 발전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단적으로 말해, 그의 사상은 정말 쌍또라이임이 확실하며, 매우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사상가 바르그 비케르네스가 아니라, 예술가 버줌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우리는 버줌을 온전히 하나의 미학적 대상으로만 국한할 필요가 있다.

버줌의 가장 큰 특징은 물론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에 있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음악만 보아도 매우 훌륭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하지만 단순히 '음악'만 본다면, 버줌의 음악보다 더 나은 음악도 수두룩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버줌이 베토벤이나 바흐 같은 클래식 음악가에 범접할 수 있으리라 주장하는 것은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들 것이며, 동 시대의 다른 음악가와 비교해보아도 취향차를 고려한다면 최고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버줌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만드는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의 음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버줌을 예술가의 정점으로 승격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버줌의 살인동기가 현실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예술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일종의 결단이라는 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버줌의 살인을 현실의 시각이 아니라, 예술의 시각에서 본다면, 오직 역사상 유일하게 버줌만이 예술을 위하여 현세의 모든 구속을 끊어버린 위대한 예술적 인간이 된다. 그에게 있어서 더 이상 현실의 도덕법칙과 상식은 작동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살아움직이는 가상적 존재, 아름다움 그 자체로서 기능하는 버줌에게 모든 판단의 근거는 예술이다.

버줌의 살인은 분명 그의 음악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자신이 음악으로 표현했던 사상과 신념을 살인을 통해 증명하였다. 예술의 형식이 아니라, 그걸 받아들이는 청취자로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진정성'과 '의도'라 볼 수 있다. 물론 진실하지 않고 위선적인 예술이 형식적으로는 고상할 수 있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이유로, 우리는 그러한 예술에 반감을 느끼곤 한다.

예컨대 U2 같은 위선자들에게 우리는 대체로 역겨움을 느낀다. U2는 누구보다 평화주의자인 척하고,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는 척 했으나, 실제로 거대 문화권력과 결탁하여 자신들의 음원 순위를 조작하고,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각종 사회적 문제에 침묵하며, 사회복지와 빈민구제를 요구하면서 그에 필요한 재원, 즉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등 위선적인 행위로 수 많은 음악팬들에게 역겨움을 선사하였다. 이처럼 예술가의 진정성과 예술작품의 의도가 불일치할 때 우리는 역겨움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는 버줌에게서 '예술적인' 역겨움을 느낄 수 없다. 예술과 현실의 간격을 구별하지 않는 사람이 볼 때는, 버줌이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에 즉 그가 현실의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버줌이 역겨울 수 있겠다. 그러나, 버줌이 자신의 예술적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면, 역겨움은 느낄 수 없고 오히려 버줌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평화와 사랑을 노래했던 존 레논이 만약 진정성있는 예술가였다면, 그는 이혼하지 말았어야 했고, 불륜하지 말았어야 했고, 가정폭력을 하지 말았어야 했고, 자신의 아들이 전범기를 옹호하지 말도록 교육해야 했다.

빈티지함과 털털함을 추구하며, 연인들의 로맨스를 노래하는 잔나비는, 학교폭력을 저지른 멤버를 애초에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으며, 리더 최정훈은 자신에게 금수저를 선서한 아버지와의 경제적 관계를 완전히 끊고 진정한 빈티지가 무엇인지 체감했어야만 했다.

반기독교와 반주류사회를 표방한 마릴린 맨슨은 공연장에서 성경 태우는 것을 넘어서 실재적인 물리적 행동을 범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공연장 바깥에서는 '상식적이고 지적인'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버줌은 기독교에 저항한 전면전과 고대 바이킹 정신의 부활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가 유로니무스와 갈등을 맺었을 때, 그는 기독교 이후 서구세계에 도래한 '법적이고 도덕적인' 해결책을 따르길 거부했다. 그는 한명의 바이킹 전사, 오딘주의자의 길을 택했고, 자신이 예술에서 표방한 바와 '정확하게 같은 방식' 즉 살인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진정한 예술을 표방한다면 현실의 이해관계와 한계를 초월해 자신의 진정성을 고수할 필요가 있다. 여러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기꺼이 포기하곤 했다. 그러나, 현실세계 최대의 금기, 즉 살인을 저지른 유일한 예술가는 (예술적 의도와 일치하는 목적에서 저지른 살인) 버줌 뿐이다.

분명 버줌은 현실적 관점에서 실패했다. 그는 이성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고 모순적인 신념을 가졌다. 그는 20년 가까이 수형생활을 한 중범죄자이다. 그는 조국에서 쫓겨나 해외에서 이름을 바꾸고 살아가고 있다. 마땅한 직업도 없이 살아가는 한량이기도 하고, 여전히 사회적 비난을 받고 매장된 불쌍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예술을 위해 현실을 포기한 것이다.

삶 자체가 자신의 예술의 일부인 예술가는 버줌 뿐이다.

우리는 버줌과 그의 예술작품을 구별하여 냉정해질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버줌은 살인자이나 그의 음악은 좋다" 라고 말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우리는 "버줌이 살인자이기 때문에 그의 음악이 완성되었다" 라고 말해야 한다.

인생과 예술을 등치시킨 역사상 유일한 인물, 버줌이 선사한 아름다움에 도취하여, 현세를 넘어 아름다움의 정점, 초월의 영역으로 나아가자.

앨범에 대한 평 : 사운드 상으로 버줌 철학의 정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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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r :  level 21   80/100
Date : 
개인적으로 Burzum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두 번째 앨범인 Det som engang var이다. 하지만, Burzum의 앨범들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을 택하라고 한다면 무조건 Filosofem이다. 본작은 Mayhem의 Euronymous가 Black Metal의 틀을 잡아놓은 이래 탄생한 가장 창조적인 역작이라 할 만하기 때문이다. 이 앨범을 통해 Count Grishnach는 Atmospheric Black Metal을 개척한 선구자로 남게 되었다. 앨범은 시작부터 끝까지 불길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운데, 정적이면서도 고즈넉한 정서를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 사실 이 앨범에서의 리프나 구성은 너무 반복적이서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5번 트랙이 바로 그러하다. 25분이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개는 이곡의 도입부에서 신비한 분위기로 청자를 끌어들이기도 하지만, 지나쳐서 앨범 전체의 역량을 깎아먹기도 한다. 하지만, 이곡이 다소 문제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앨범 전체에 수록된 곡들은 Burzum을 한 사조의 창시자로 기림받게 하기에 충분하다. 타이틀 트랙이나 Jesu død 같은 곡은 Count Grishnach의 탁월한 역량을 입증하는 곡들이다. 황량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영롱한 키보드 음은 청자를 음산한 분위기에 취하게 한다. 분명 반복적인 구조로 청자에 따라서는 지루함을 느끼게 할 수 있지만, 7,8분대의 다소 긴 시간을 청자를 매료시키기에는 충분한 트랙들이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곡들의 수준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어서 밸러스가 어긋나 객관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Filosofem은 문제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후 수많은 밴드들이 Count Grishnach가 만들어 놓은 포맷을 숱하게 카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Filosofem에 명반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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