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업으로 하는 뮤지션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며 숙명이다. 그러나 팬의 입장에서는 때로는 변치않고 현재의 스타일을 고수해주었으면 하는 밴드도 있다. 내게 Enforcer가 바로 그러한 밴드이다. 이들이 지향하는 복고식 Heavy Metal은 내 개인적인 취향에 정확하게 부합된다. 그런데, 이들이 네 번째 앨범인 From Beyond를 내기 전까지만 해도 내심 불안하긴 했다. 본작을 발표하기에 앞서 Enforcer는 장장 세 장의 앨범에서 그들 특유의 스피디한 매력이 넘치는 헤비 메탈 앨범을 발표해왔다. 통상적인 밴드라면, 이제 변화를 모색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점이었다. 근자에 초기에만해도 헤비 메탈 노선을 걷다가도 이후에 Metalcore로 노선 변경을 시도하는 밴드를 여럿봐온지라 이들도 그렇게 샛길로 새는게 아닌가 불안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감은 본작이 나오고나서 말끔히 가셔버렸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Destroyer를 막 들었을 때 안도감을 느겼다. 이들은 데뷔 앨범부터 정립해놓은 스타일을 이번 앨범에서도 고집스럽게 고수한 것이었다. 곡들이 약간 Progressive Metal스러워진 경향을 얼핏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From Beyond는 이전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빠른 질주감과 멜로디 라인이 유려한 작품이다. 시간이 흐르면, Enforcer도 변화할 수밖에 없는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그것이 언제, 어느때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 이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복고식 사운드를 밀어붙일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