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il of Imagination Review
| Band | |
|---|---|
| Album | Veil of Imagination |
| Type | Album (Studio full-length) |
| Released | November 1, 2019 |
| Genres | Progressive Metal, Symphonic Metal |
| Labels | Independent |
| Length | 1:06:13 |
| Ranked | #38 for 2019 , #2,365 all-time |
Album rating : 88.2 / 100
Votes : 13 (1 review)
Votes : 13 (1 review)
May 12, 2026
미국 보스턴의 프로그레시브 포크 메탈 밴드 Wilderun의 정규 3집 ‘Veil of Imagination’이다. 처음에는 독특한 엘범 커버에 눈길이 쏠려 들어보았다. 이내 경탄을 금치 못했다. 마지막 트랙 ‘When the Fire and the Rose Were One’의 말미의 페이드인 이후, 나는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던지듯 이 엘범은 “Is all still truly here? Release me from my future and name“ 라는 구절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엘범 전체를 관통하는 멜로디에 변주를 가한 페이드인은 마치 이 엘범은 시작과 끝이 정해진 선분이 아닌 원의 형태를 갖추고 있음을 말하려 하는 듯 했다. ‘Veil of Imagination’은 끝없이 감정을 고무시켜 종국에는 감정적 탈진에 이르게까지 한다. 나는 지금껏 이런 음악을 들어본 경험이 없다.
이들의 사운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장엄하고 매혹적인, 거대한 무언가를 목도하였을 때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겠다. 겹겹이 쌓인 사운드레이어가 거대한 숲처럼 느껴지는 사운드스케이프를 형성하면서도 동시에 뭉게짐 없이 모든 악기의 소리가 선명하게 고막을 강타한다. 처절하고 사악하기보다는 강렬하면서 육중한 그로울링과 성악이 베이스인듯한 깔끔한 클린보컬의 교차가 괴기스러운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이 엘범의 가장 인상깊은 점은 바로 엘범 전반에 걸쳐 물흐르듯 진행되는 완급조절이다. 클린에서 그로울링으로의 전환, 레이어의 가감, 기다렸다는 듯이 폭발하는 오케스트레이션 어느 하나 나무랄데 없이 완벽한 구성을 이룬다. 그리고 여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Evan Anderson Berry의 극도로 부드럽고 섬세한 터치를 보유한 보컬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이야기를 풀듯 읊조리고 때로는 비밀을 얘기하듯 속삭이며 때로는 웅장한 공간감을 형성하는 그의 보컬 하나만으로 극적 전환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는 Century Media Records 유튜브 채널에서 이들의 Seventh son of a seventh son 아이언메이든 커버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엘범의 컨셉은 제목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상상력의 양면성이다. 상상력은 인간을 고양시키는 힘이지만, 동시에 세계를 가리는 장막이기도 하다. 시작부터 존재론적 붕괴에 진입하여 인간의 문명을 비판하며 목표와 결의의 허무함, 인식의 한계를 제시한다. 이내 상상이 현실을 압도하면서 자아는 이야기 속에 갇히고 현실은 사고로 대체된다. 엘범의 최후반부에서는 끝내 자아의 해체를 선언하며 미래와 이름, 욕망과 정체성을 버리고 존재 이전의 상태로의 회귀를 소망하며 막을 내린다. 이러한 일종의 열린 결말은 기묘한 페이드인을 통해서 엘범의 출발점, 즉 존재론적 붕괴상태로의 회귀 또한 암시하며 순환적 결말의 형태를 띤다.
첫번째 트랙 ‘The Unimaginable Zero Summer’는 나래이션과 함께 대서사시의 장막을 올린다. 잠깐의 휴지 이후 엘범 전체를 관통하는 멜로디가 페이드인되며 섬세한 어쿠스틱 기타, 서정적인 클린보컬,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코러스, 그리고 오케스트레이션이 차례로 쌓이며 분위기가 고조된다. 이내 폭발적인 블래스트비트와 함께 엘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뒤따라 강력한 그로울링과 클린보컬이 교차되며, 레이어가 겹겹이 쌓여 이 트랙에서 가장 헤비한 구간을 지나면 남성코러스와 함께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고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트랙의 후반부에서는 기이한 특수효과를 입힌 클린보컬이 등장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직선적인 기타솔로 구간을 지나 고요한 피아노 파트로 자연스레 연결되며 다음 트랙의 시작을 알리는 페이드인과 함께 마무리된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트랙에 전부 녹여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게다가 일련의 과정에서 일순간의 억지스러움조차 찾아볼 수 없으며, 마치 하나의 잘 짜여진 연극을 본 듯한 느낌을 준다. ‘The Unimaginable Zero Summer’는 이들의 방법론을 가장 잘 설명하는 트랙이며 엘범의 출발점이자 엘범 전체의 기승전결이 압축되어 담겨있는 축소판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지 못한다. 그는 삶을 분석하고 구성하려 한다. 그는,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지식의 요새를 구축하여 모든 것을 분류하고 통제하려 한다. 하지만 Wilderun은 여기서 중요한 역설을 제시한다. “Every piece… But the order was wrong”. 즉,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려 하지만, 애초에 세계를 이해하려는 방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인식 체계의 붕괴를 암시하는 질문을 던지며 다음 트랙으로 넘어간다.
‘O Resolution!’은 이들이 ‘Wintersun’에게 큰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하게 하는 트랙이다. 장엄한 오케스트레이션의 활용과 레이어를 증폭시키는 방식, 갑작스레 폭발하는 고밀도의 사운드와 폭력성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방식이 그들과 매우 유사하다. 이 트랙에서의 클린 보컬은 첫번째 트랙에서 들려줬던 것과는 조금 다른 질감으로 매혹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이 부분이 상당히 중독적이어서 몇번이고 반복하여 재생했다. 중후반부의 기타솔로 또한 오리지널리티는 부족하지만 뛰어나며 트랙과 잘 어울린다. 이후 극적인 요소가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Sleeping Ambassadors of the Sun’으로 이어진다. 이 두 곡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O Resolution!”이 인간이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방식 자체의 허무함을 이야기한다면, “Sleeping Ambassadors of the Sun”은 그보다 더 나아가 인간이 현실을 인식하는 능력 자체가 불완전하다고 말한다. 즉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서와 의미를 만들지만, 애초에 인간 의식 자체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Scentless Core(Budding)’은 엘범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Far from Where Dreams Unfurl’로 넘어가기 전의 인스트루멘탈 트랙이다. ‘냄새없는 핵심(싹트는 중)’으로 해석되는 이 트랙의 제목은 주인공이 존재의 무의미성과 공허를 점차 인식해 감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Far from Where Dreams Unfurl’에서 문명과 인간의 사고 체계 전반에 걸친 비판으로 이어지며, 이내 ‘Scentless Core(Fading)’에서 현실과의 완전한 해리상태에 다다른다. ‘Far from Where Dreams Unfurl’은 엘범의 하이라이트이자 Folk metal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트랙이다. Evan Anderson Berry의 보컬이 향토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오케스트레이션과 코러스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The Tyranny of Imagination’은 엘범 전체의 철학적 중심축이자, 앞선 곡들에서 조금씩 드러나던 문제의식이 완전히 폭발하는 순간이다. 이 곡은 단순히 “상상력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의식 자체가 현실을 직접 살아가지 못하고, 언제나 이야기와 개념과 미래의 환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룬다. 여기서 말하는 “imagination”은 창조적 능력이나 예술적 재능 같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현실을 견디기 위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정신적 구조 전체를 뜻한다. 기억, 언어, 자아, 미래에 대한 기대, 삶의 의미 같은 것들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곡은 바로 그 상상력이 인간을 현실로부터 영원히 분리시킨다고 말한다. 가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Your story mercilessly takes hold of your reality / And places it just out of reach”라는 구절이다. 인간은 자신이 현실 속에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삶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것을 해석하고, 설명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과거와 미래의 맥락 속에 배치한다. 결국 현실은 직접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기억과 사고를 통해 재구성된 형태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현실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인다”는 표현이 나온다. 인간은 현실에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곡은 특히 인간이 미래 속으로 도피하는 존재라는 점을 강하게 비판한다. “Cowardly you hide inside the future where despair is not yet true”라는 구절은 인간이 현재를 견디지 못하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속으로 자신을 숨긴다는 의미다. 사람은 늘 미래의 목표, 가능성, 희망, 두려움 속에 산다. 하지만 그 순간 현재는 사라진다. 인간은 현재를 살아가는 대신 언제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 속에서 자신을 투영한다. 그래서 상상력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가 된다. 또한 이 곡은 언어와 인식의 관계를 매우 깊게 파고든다. “The blood inside your eyes is ink inside your pen”이라는 가사는 인간이 세상을 보는 순간 이미 그것을 서술과 해석의 대상으로 바꿔버린다는 의미다. 눈 속의 피가 펜 속의 잉크가 된다는 것은, 경험이 즉시 이야기로 변환된다는 뜻이다. 인간은 어떤 것도 순수하게 경험하지 못한다. 모든 것은 언어화되고 개념화되며 하나의 서사로 재편된다. 그런데 바로 그 과정 속에서 현실은 왜곡된다. 이 점에서 이 곡은 현상학이나 후기구조주의 철학과도 닿아 있다. 인간은 세계 자체에 접근할 수 없고, 오직 자신이 구성한 의미 체계 안에서만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곡의 마지막 질문은 이 앨범 전체에서 가장 무서운 문장 중 하나다. “What becomes of death when all the world withers into thought?” 인간은 죽음을 세계의 끝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만약 세계 자체가 이미 사고 속으로 흡수되어버렸다면, 죽음은 더 이상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실과 사고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죽음조차 개념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단순한 허무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의식이 너무 거대해져 현실 자체를 집어삼켜버리는 상태를 말한다. 세계는 더 이상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사고 속에 갇힌다.
엘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When the Fire and the Rose Were One’은 엘범의 중심이 되는 피아노 멜로디와 함께 시작한다. 이내 급작스러운 레이어의 증폭과 함께 이들의 모든것을 쏟는 듯한 연주가 이어진다. 연주 파트가 꽤나 긴 러닝타임을 차지함에도 일말의 지루함조차 느껴지지 않으며 마치 잘 짜여진 뮤지컬 한 편을 통채로 관람한듯한 느낌을 준다. 트랙의 전반부에서 화자는 과거 이름도, 미래도, 자아조차 없었던 순수한 존재 상태를 회상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인간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즉, 자신의 정신 구조 속에 갇힌다. 여기까지는 엘범 전체의 요약서술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화자는 “Release me from my future and name”라는 구절을 통해 자아의 해체를 선언한다. 욕망으로 대변되는 미래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름을 버리고 존재 이전의 상태로의 회귀를 소망한다. 최후반부 나래이션 또한 인상깊다. 해당 문장은 T. S. Eliot의 Four Quartets에서 인용된 것으로, 앨범 전체를 관통하던 현실과 상상, 자아와 세계의 갈등을 마지막에 하나로 통합한다. 앨범 속 화자는 계속해서 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하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현실과 멀어지고 자신의 사고와 상상 속에 갇혀버린다. 그러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And all shall be well”이라는 문장은 인간이 모든 것을 해석하고 의미화하려는 강박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평온에 도달할 수 있다는 암시처럼 들린다. 특히 “And the fire and the rose are one”이라는 마지막 구절은 파괴와 아름다움, 고통과 생명처럼 서로 대립하던 것들이 사실은 하나의 본질 안에 있었다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불은 인간 의식의 고통과 변화, 장미는 존재의 아름다움과 생명성을 상징하지만, 마지막에는 둘이 구분되지 않는다. 이는 앨범 전체에서 반복되던 이분법이 해체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결국 이 내레이션은 인간이 세계를 끝없이 분석하고 상상 속에서 의미를 만들수록 현실에서 멀어진다는 앨범의 비극을 마무리하면서도, 동시에 그 모든 분열을 초월한 상태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리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페이드인과 함께 대서사시는 막을 내린다.
‘Veil of Imagination’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의미를 구축하려 할수록 오히려 현실에서 멀어져 가는 과정을 그린 철학적 서사다. 앨범 초반에서 화자는 지식과 질서, 기억과 해답을 통해 삶을 통제하려 하지만, 점점 인간 의식 자체가 현실을 왜곡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후 곡들은 인간이 미래와 상상, 언어와 이야기 속으로 도피하며 현재의 삶과 존재 자체를 놓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특히 중반 이후에는 현실보다 사고와 해석이 우위에 놓이면서 자아와 세계의 경계가 붕괴하고, 인간은 자신이 만든 정신적 구조 속에 갇혀버린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면 화자는 미래와 이름, 즉 자아와 욕망을 내려놓고 순수한 존재 상태로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결국 이 앨범은 상상력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현실로부터 분리시켰다는 비극을 다루면서도, 마지막에는 모든 분열과 이분법을 초월한 통합의 가능성을 암시하며 끝난다.
이런 엘범이야말로 “완성”을 추구하는 프로그레시브의 ‘극의’가 아닌가?
이들의 사운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장엄하고 매혹적인, 거대한 무언가를 목도하였을 때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겠다. 겹겹이 쌓인 사운드레이어가 거대한 숲처럼 느껴지는 사운드스케이프를 형성하면서도 동시에 뭉게짐 없이 모든 악기의 소리가 선명하게 고막을 강타한다. 처절하고 사악하기보다는 강렬하면서 육중한 그로울링과 성악이 베이스인듯한 깔끔한 클린보컬의 교차가 괴기스러운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이 엘범의 가장 인상깊은 점은 바로 엘범 전반에 걸쳐 물흐르듯 진행되는 완급조절이다. 클린에서 그로울링으로의 전환, 레이어의 가감, 기다렸다는 듯이 폭발하는 오케스트레이션 어느 하나 나무랄데 없이 완벽한 구성을 이룬다. 그리고 여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Evan Anderson Berry의 극도로 부드럽고 섬세한 터치를 보유한 보컬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이야기를 풀듯 읊조리고 때로는 비밀을 얘기하듯 속삭이며 때로는 웅장한 공간감을 형성하는 그의 보컬 하나만으로 극적 전환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는 Century Media Records 유튜브 채널에서 이들의 Seventh son of a seventh son 아이언메이든 커버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엘범의 컨셉은 제목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상상력의 양면성이다. 상상력은 인간을 고양시키는 힘이지만, 동시에 세계를 가리는 장막이기도 하다. 시작부터 존재론적 붕괴에 진입하여 인간의 문명을 비판하며 목표와 결의의 허무함, 인식의 한계를 제시한다. 이내 상상이 현실을 압도하면서 자아는 이야기 속에 갇히고 현실은 사고로 대체된다. 엘범의 최후반부에서는 끝내 자아의 해체를 선언하며 미래와 이름, 욕망과 정체성을 버리고 존재 이전의 상태로의 회귀를 소망하며 막을 내린다. 이러한 일종의 열린 결말은 기묘한 페이드인을 통해서 엘범의 출발점, 즉 존재론적 붕괴상태로의 회귀 또한 암시하며 순환적 결말의 형태를 띤다.
첫번째 트랙 ‘The Unimaginable Zero Summer’는 나래이션과 함께 대서사시의 장막을 올린다. 잠깐의 휴지 이후 엘범 전체를 관통하는 멜로디가 페이드인되며 섬세한 어쿠스틱 기타, 서정적인 클린보컬,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코러스, 그리고 오케스트레이션이 차례로 쌓이며 분위기가 고조된다. 이내 폭발적인 블래스트비트와 함께 엘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뒤따라 강력한 그로울링과 클린보컬이 교차되며, 레이어가 겹겹이 쌓여 이 트랙에서 가장 헤비한 구간을 지나면 남성코러스와 함께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고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트랙의 후반부에서는 기이한 특수효과를 입힌 클린보컬이 등장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직선적인 기타솔로 구간을 지나 고요한 피아노 파트로 자연스레 연결되며 다음 트랙의 시작을 알리는 페이드인과 함께 마무리된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트랙에 전부 녹여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게다가 일련의 과정에서 일순간의 억지스러움조차 찾아볼 수 없으며, 마치 하나의 잘 짜여진 연극을 본 듯한 느낌을 준다. ‘The Unimaginable Zero Summer’는 이들의 방법론을 가장 잘 설명하는 트랙이며 엘범의 출발점이자 엘범 전체의 기승전결이 압축되어 담겨있는 축소판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지 못한다. 그는 삶을 분석하고 구성하려 한다. 그는,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지식의 요새를 구축하여 모든 것을 분류하고 통제하려 한다. 하지만 Wilderun은 여기서 중요한 역설을 제시한다. “Every piece… But the order was wrong”. 즉,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려 하지만, 애초에 세계를 이해하려는 방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인식 체계의 붕괴를 암시하는 질문을 던지며 다음 트랙으로 넘어간다.
‘O Resolution!’은 이들이 ‘Wintersun’에게 큰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하게 하는 트랙이다. 장엄한 오케스트레이션의 활용과 레이어를 증폭시키는 방식, 갑작스레 폭발하는 고밀도의 사운드와 폭력성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방식이 그들과 매우 유사하다. 이 트랙에서의 클린 보컬은 첫번째 트랙에서 들려줬던 것과는 조금 다른 질감으로 매혹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이 부분이 상당히 중독적이어서 몇번이고 반복하여 재생했다. 중후반부의 기타솔로 또한 오리지널리티는 부족하지만 뛰어나며 트랙과 잘 어울린다. 이후 극적인 요소가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Sleeping Ambassadors of the Sun’으로 이어진다. 이 두 곡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O Resolution!”이 인간이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방식 자체의 허무함을 이야기한다면, “Sleeping Ambassadors of the Sun”은 그보다 더 나아가 인간이 현실을 인식하는 능력 자체가 불완전하다고 말한다. 즉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서와 의미를 만들지만, 애초에 인간 의식 자체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Scentless Core(Budding)’은 엘범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Far from Where Dreams Unfurl’로 넘어가기 전의 인스트루멘탈 트랙이다. ‘냄새없는 핵심(싹트는 중)’으로 해석되는 이 트랙의 제목은 주인공이 존재의 무의미성과 공허를 점차 인식해 감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Far from Where Dreams Unfurl’에서 문명과 인간의 사고 체계 전반에 걸친 비판으로 이어지며, 이내 ‘Scentless Core(Fading)’에서 현실과의 완전한 해리상태에 다다른다. ‘Far from Where Dreams Unfurl’은 엘범의 하이라이트이자 Folk metal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트랙이다. Evan Anderson Berry의 보컬이 향토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오케스트레이션과 코러스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The Tyranny of Imagination’은 엘범 전체의 철학적 중심축이자, 앞선 곡들에서 조금씩 드러나던 문제의식이 완전히 폭발하는 순간이다. 이 곡은 단순히 “상상력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의식 자체가 현실을 직접 살아가지 못하고, 언제나 이야기와 개념과 미래의 환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룬다. 여기서 말하는 “imagination”은 창조적 능력이나 예술적 재능 같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현실을 견디기 위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정신적 구조 전체를 뜻한다. 기억, 언어, 자아, 미래에 대한 기대, 삶의 의미 같은 것들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곡은 바로 그 상상력이 인간을 현실로부터 영원히 분리시킨다고 말한다. 가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Your story mercilessly takes hold of your reality / And places it just out of reach”라는 구절이다. 인간은 자신이 현실 속에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삶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것을 해석하고, 설명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과거와 미래의 맥락 속에 배치한다. 결국 현실은 직접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기억과 사고를 통해 재구성된 형태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현실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인다”는 표현이 나온다. 인간은 현실에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곡은 특히 인간이 미래 속으로 도피하는 존재라는 점을 강하게 비판한다. “Cowardly you hide inside the future where despair is not yet true”라는 구절은 인간이 현재를 견디지 못하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속으로 자신을 숨긴다는 의미다. 사람은 늘 미래의 목표, 가능성, 희망, 두려움 속에 산다. 하지만 그 순간 현재는 사라진다. 인간은 현재를 살아가는 대신 언제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 속에서 자신을 투영한다. 그래서 상상력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가 된다. 또한 이 곡은 언어와 인식의 관계를 매우 깊게 파고든다. “The blood inside your eyes is ink inside your pen”이라는 가사는 인간이 세상을 보는 순간 이미 그것을 서술과 해석의 대상으로 바꿔버린다는 의미다. 눈 속의 피가 펜 속의 잉크가 된다는 것은, 경험이 즉시 이야기로 변환된다는 뜻이다. 인간은 어떤 것도 순수하게 경험하지 못한다. 모든 것은 언어화되고 개념화되며 하나의 서사로 재편된다. 그런데 바로 그 과정 속에서 현실은 왜곡된다. 이 점에서 이 곡은 현상학이나 후기구조주의 철학과도 닿아 있다. 인간은 세계 자체에 접근할 수 없고, 오직 자신이 구성한 의미 체계 안에서만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곡의 마지막 질문은 이 앨범 전체에서 가장 무서운 문장 중 하나다. “What becomes of death when all the world withers into thought?” 인간은 죽음을 세계의 끝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만약 세계 자체가 이미 사고 속으로 흡수되어버렸다면, 죽음은 더 이상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실과 사고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죽음조차 개념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단순한 허무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의식이 너무 거대해져 현실 자체를 집어삼켜버리는 상태를 말한다. 세계는 더 이상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사고 속에 갇힌다.
엘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When the Fire and the Rose Were One’은 엘범의 중심이 되는 피아노 멜로디와 함께 시작한다. 이내 급작스러운 레이어의 증폭과 함께 이들의 모든것을 쏟는 듯한 연주가 이어진다. 연주 파트가 꽤나 긴 러닝타임을 차지함에도 일말의 지루함조차 느껴지지 않으며 마치 잘 짜여진 뮤지컬 한 편을 통채로 관람한듯한 느낌을 준다. 트랙의 전반부에서 화자는 과거 이름도, 미래도, 자아조차 없었던 순수한 존재 상태를 회상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인간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즉, 자신의 정신 구조 속에 갇힌다. 여기까지는 엘범 전체의 요약서술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화자는 “Release me from my future and name”라는 구절을 통해 자아의 해체를 선언한다. 욕망으로 대변되는 미래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름을 버리고 존재 이전의 상태로의 회귀를 소망한다. 최후반부 나래이션 또한 인상깊다. 해당 문장은 T. S. Eliot의 Four Quartets에서 인용된 것으로, 앨범 전체를 관통하던 현실과 상상, 자아와 세계의 갈등을 마지막에 하나로 통합한다. 앨범 속 화자는 계속해서 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하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현실과 멀어지고 자신의 사고와 상상 속에 갇혀버린다. 그러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And all shall be well”이라는 문장은 인간이 모든 것을 해석하고 의미화하려는 강박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평온에 도달할 수 있다는 암시처럼 들린다. 특히 “And the fire and the rose are one”이라는 마지막 구절은 파괴와 아름다움, 고통과 생명처럼 서로 대립하던 것들이 사실은 하나의 본질 안에 있었다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불은 인간 의식의 고통과 변화, 장미는 존재의 아름다움과 생명성을 상징하지만, 마지막에는 둘이 구분되지 않는다. 이는 앨범 전체에서 반복되던 이분법이 해체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결국 이 내레이션은 인간이 세계를 끝없이 분석하고 상상 속에서 의미를 만들수록 현실에서 멀어진다는 앨범의 비극을 마무리하면서도, 동시에 그 모든 분열을 초월한 상태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리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페이드인과 함께 대서사시는 막을 내린다.
‘Veil of Imagination’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의미를 구축하려 할수록 오히려 현실에서 멀어져 가는 과정을 그린 철학적 서사다. 앨범 초반에서 화자는 지식과 질서, 기억과 해답을 통해 삶을 통제하려 하지만, 점점 인간 의식 자체가 현실을 왜곡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후 곡들은 인간이 미래와 상상, 언어와 이야기 속으로 도피하며 현재의 삶과 존재 자체를 놓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특히 중반 이후에는 현실보다 사고와 해석이 우위에 놓이면서 자아와 세계의 경계가 붕괴하고, 인간은 자신이 만든 정신적 구조 속에 갇혀버린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면 화자는 미래와 이름, 즉 자아와 욕망을 내려놓고 순수한 존재 상태로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결국 이 앨범은 상상력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현실로부터 분리시켰다는 비극을 다루면서도, 마지막에는 모든 분열과 이분법을 초월한 통합의 가능성을 암시하며 끝난다.
이런 엘범이야말로 “완성”을 추구하는 프로그레시브의 ‘극의’가 아닌가?
Track listing (Songs)
| title | rating | votes | video | ||
|---|---|---|---|---|---|
| 1. | The Unimaginable Zero Summer | 14:31 | 100 | 2 | Audio |
| 2. | O Resolution! | 6:35 | 95 | 2 | Music Video Audio |
| 3. | Sleeping Ambassadors of the Sun | 6:31 | 92.5 | 2 | |
| 4. | Scentless Core (Budding) | 3:33 | 92.5 | 2 | |
| 5. | Far from Where Dreams Unfurl | 8:28 | 100 | 2 | Audio |
| 6. | Scentless Core (Fading) | 5:21 | 92.5 | 2 | |
| 7. | The Tyranny of Imagination | 9:22 | 92.5 | 2 | Audio Lyric Video |
| 8. | When the Fire and the Rose Were One | 11:51 | 95 | 3 | Audio |
Line-up (members)
- Evan Anderson Berry : Vocals, Rhythm Guitar, Piano, Music
- Joe Gettler : Lead Guitar
- Daniel Müller : Bass, Keyboards, Orchestrations
- Jonathan Teachey : Drums
- Wayne Ingram : Orchestrations
12,085 reviews
| cover art | Artist | Album review | Reviewer | Rating | Date | Likes | |
|---|---|---|---|---|---|---|---|
![]() | Life Is Killing Me Review (2003) | 65 | 1 hour ago | 0 | |||
![]() | Traveller Review (2003) | 75 | 1 hour ago | 0 | |||
![]() | 100 | 1 hour ago | 0 | ||||
![]() | Embrace the Galaxy Review (2003) | 75 | 2 hours ago | 0 | |||
![]() | Dopesmoker Review (2003) | 40 | 2 hours ago | 0 | |||
![]() | One More Light Review (2017) | 90 | 10 hours ago | 1 | |||
![]() | Karmagmassacre Review (2003) | 75 | 13 hours ago | 0 | |||
![]() | Helvete Review (2003) | 80 | 13 hours ago | 0 | |||
![]() | Kivenkantaja Review (2003) | 70 | 1 day ago | 0 | |||
![]() | 80 | 1 day ago | 0 | ||||
![]() | As the Palaces Burn Review (2003) | 85 | 1 day ago | 0 | |||
![]() | Echos Review (2003) | 60 | 1 day ago | 0 | |||
![]() | Choirs of the Eye Review (2003) | 65 | 1 day ago | 0 | |||
![]() | 90 | 1 day ago | 0 | ||||
![]() | Vulgar Review (2003) | 85 | 3 days ago | 0 | |||
![]() | 45 | 3 days ago | 1 | ||||
![]() | あくまのうた (Akuma no Uta) Review (2003) | 40 | 3 days ago | 0 | |||
![]() | The Blessed Hellride Review (2003) | 60 | 3 days ago | 0 | |||
![]() | 75 | 4 days ago | 0 | ||||
![]() | 85 | 4 days ago | 1 |
Epigone Review (2022)
건치미소 90/100Mar 8, 2022 Likes : 3
완벽하게 아름답고, 빈틈없이 촘촘하며, 긴장과 이완 사이의 줄타기도 흔들림 없다.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하면서도, 중간중간 터져나오는 강렬한 부분이 메탈임을 상기시킨다. 이 과정이 예술인데, 전조없이 튀어나오는데도 듣는이를 놀라게하거나 부자연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마... Read More
Ascheler 100/100Jan 9, 2026 Likes : 1
Wilderun has strong mastery in mixing soft and death vocals. Their instrumentals always sound professional and nuanced, with a good balance of energetic and mellow instrumentals. For lyrics, Wilderun writes with a style that blends abstract poetry with a technical literature style.
Though sometimes obscure, the intention of the lyrics are carried most prominently by the swi...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