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 In
Register
Free Board
Name :  level 11 소설가H
Date :  2026-05-08 00:26
Hits :  573

[드림씨어터, 꿈의 기하학] 3장: 스팬덱스 바지와 엇갈린 퍼즐 (1987)

이전 편 바로가기

제1부: 거인의 요람
3장: 스팬덱스 바지와 엇갈린 퍼즐 (1987)

1. 파이프 폭탄

브루클린을 떠나 롱아일랜드로 이주한 소년 크리스 콜린스는 인적 드문 숲 속으로 숨어들어 파이프 폭탄을 조립했다. 어린 시절 존 페트루치와 BMX 자전거를 몰며 골목을 누비기도 했지만, 두 소년이 딛고 서 있는 지반은 달랐다. 페트루치가 방안에 틀어박혀 메트로놈에 맞춰 세계를 가늠할 때, 크리스는 화약 냄새를 뒤집어쓴 채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폭발음과 함께 아름드리나무를 산산조각 내곤 했던 그에게 로큰롤은 예술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분노였다.

비행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결국 아들을 쫓아냈고, 크리스는 퀸스에 있는 아버지의 비좁은 집으로 밀려났다. 글램 메탈 프론트맨의 꿈은 팍팍한 현실에 마모되어 갔다. 일상에 지친 그는 해병대 모병소에 입대 지원서를 냈다. 신체검사 확인란에 도장만 찍히면 훈련소로 떠나야 했던 그 주, 전화기가 울렸다. 옛 친구 페트루치였다.

"크리스, 네가 필요해. 곧 앨범을 만들 건데, 와서 노래해 줬으면 좋겠어."

크리스는 입대 서류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마제스티의 프론트맨이 되기 위해 롱아일랜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롱비치의 포트노이 자택 지하실.

마제스티의 거점인 이곳은 연습실이라기보다 실험실에 가까웠다. 앰프 노브는 소수점 단위의 각도로 맞춰졌고, 포트노이의 심벌은 자로 잰 듯 대칭을 이뤘다. 버클리에서 돌아온 세 명 역시 온전히 음악만 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명은 악기점에서 장비를 나르고 베이스 레슨을 했고, 페트루치는 식료품점에서 몇 달간 일하며 기타 레슨으로 수입을 보충했다. 포트노이는 중국 음식 배달을 뛰었고, 레코드 가게에서도 일했지만 월급을 현금 대신 음반 크레딧으로 받아 전부 레코드를 사들이는 바람에 실질적인 수입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적어도 최소한의 숙식을 뒷받침받을 수 있는 중산층 가정 출신이었고, 남는 에너지를 온전히 연습과 곡 작업에 쏟아부을 수 있는 조건에 있었다.

반면 문을 열고 들어선 크리스는 달랐다. 그에게는 재능을 알아봐주거나 격려해 주는 가족이 없었다. 건설 현장에서 13시간씩 도랑을 파는 막노동으로 가족의 생계를 떠받쳐야 했고, 오후 2시까지 느긋하게 일어나 델리에서 살라미나 써는 정도의 알바를 할 형편조차 되지 않았다. 정식 음악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모든 곡 작업이 이미 끝난 후에야 합류한 터라, 음악적 형성 과정에 기여할 기회조차 없었다. 남이 지어놓은 집에 나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어보는 손님 같은 처지였다.

하지만 크리스가 마이크를 쥐자 밴드는 숨을 죽였다. 스피커를 찢을 듯한 리프 위로 목소리가 폭발했다. 퀸스라이크의 'Queen of the Reich'를 부르며 초고음역을 완벽하게 커버했다. 포트노이가 스틱을 돌리며 환호했다. 밴드의 마지막 빈칸인 보컬이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합류 직후부터 마찰은 시작됐다. 크리스가 진이 다 빠진 몸으로 샤워할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연습실에 도착하면 멤버들은 이미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버클리 출신 천재들의 언어는 크리스에게 암호에 가까웠고, 그가 감정대로 박자를 늘어뜨릴 때마다 페트루치의 교정이 날아들었다.

"크리스, 예순네 번째 마디로 진입할 때 오차가 있었어. 박자가 8분음표 정도 밀렸고 피치도 흔들렸지. 거긴 드럼과 베이스가 유니즌으로 맞물리는 구간이야. 네 감정대로 박자를 늘어뜨리면 구조가 무너져."

포트노이가 스틱으로 심벌을 툭툭 치며 거들었다.

"맞아. 그리고 아르바이트 시간을 줄일 순 없어? 우린 프로가 되어야 해. 네가 먼지투성이로 지쳐서 올 때까지 우리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잖아. 완전한 헌신이 필요해."

기름때 낀 손으로 구겨진 악보를 움켜쥔 크리스가 마이크 스탠드를 밀쳐냈다.

"너희는 내 입장이 돼본 적 없잖아! 굶어 죽을 순 없다고. 나는 매일 진흙탕에서 13시간씩 도랑을 파고 구르다 오는데, 하루 종일 부모가 사준 밥 먹으며 기타나 치는 녀석들이 나한테 헌신과 연습 부족을 운운해? 샤워할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쫓기는데, 영감이 남아있을 리가 있어? 너희가 내 삶의 무게를 알아?"

지하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크리스의 작업화에서 흙더미가 투둑, 하고 흘러내렸다.


2. 선댄스 클럽

긴장 속에서도 마제스티의 뼈대는 착실하게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포트노이의 할머니가 쥐여준 비상금으로 장만한 4트랙 카세트 녹음기가 이들의 첫 무기였다. 6곡을 녹음했다. 음질은 투박했지만, 'Another Won'과 'March of the Tyrant'에 담긴 소리는 당대 언더그라운드 메탈 씬의 문법을 벗어나 있었다.

데모 테이프를 유통하는 과정에서 포트노이의 강박적 기질이 드러났다. 전 세계 헤비메탈 잡지사, 라디오 스테이션, 테이프 트레이더들의 주소와 연락처를 수집해 두꺼운 장부에 알파벳 순서와 매체 영향력별로 빼곡히 적어 내렸다. 명단을 수십 번씩 붉은 펜으로 체크하며 밴드의 향방을 통제했다.

"내 리스트대로 보냈더니 독일이랑 일본에서도 테이프를 보내달라고 난리야!"

포트노이가 우편물을 흔들며 외쳤다. 1,000장의 테이프가 매진되었고, 마제스티라는 이름은 언더그라운드를 타고 번져 나갔다.

하지만 로컬 클럽의 현실은 우편함 속의 환호와 달랐다. 1986년 5월 28일, 롱아일랜드 베이쇼어의 '선댄스 클럽'에서 첫 라이브가 열렸다. 관객들은 머틀리 크루 스타일의 4박자 헤비메탈을 기대하며 맥주를 들이켰다. 무대 위에서 쉴 새 없이 쪼개지는 긴 연주가 이어지자, 관객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러나 페트루치와 명은 굳은살 박인 손가락과 지판 위로 시선을 고정한 채 연주에만 몰두했다.

얼마 뒤 열린 '라이트 트랙 인' 클럽 공연. 무대는 나무 합판과 테이블을 테이프로 이어 붙인 조잡한 형태였다. 분위기를 띄우려던 크리스 콜린스가 마이크 스탠드를 쥐고 무대 앞으로 뛰어나갔다.

우지직.

합판이 부서지며 콜린스의 오른쪽 다리가 바닥 구멍 사이로 빠졌다. 허벅지까지 무대에 박힌 채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그는 그 자세 그대로 핏대를 세우며 초고음을 질렀다.

등 뒤의 멤버들은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페트루치와 명은 표정 변화 없이 솔로 프레이즈를 짚어 나갔고, 포트노이는 흔들림 없이 템포를 유지했다. 부서진 합판 사이에 다리가 낀 프론트맨과, 그 뒤에서 메트로놈처럼 박자를 쪼개는 세 남자의 연주가 낡은 클럽을 채우고 있었다.


3. 정글 사나이

촌극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브루클린의 록 클럽 '라무르'. 메탈리카와 키스가 거쳐 간 무대였다. 콜린스는 몸에 딱 붙는 스팬덱스 바지를 차려입고 무대를 누볐다.

격렬하게 고음을 지르며 바닥으로 몸을 낮추던 순간, 부욱, 하고 무언가 튿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스팬덱스 가랑이가 찢어졌다. 콜린스는 속옷을 가리려 다리를 오므린 채 엉거주춤하게 노래를 이어갔다. 등 뒤에서 연주에 몰두하던 페트루치와 명은 그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진짜 파국은 얼마 뒤 다른 클럽에서 터졌다. 분위기를 띄우려던 콜린스가 마이크를 쥐고 과장된 라디오 아나운서 톤으로 멤버들을 소개했다.

"자, 다음은 제 왼쪽을 보시죠! 한국의 정글에서 곧장 날아온 사나이... 존 명입니다!"

페트루치가 고개를 들어 콜린스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무대 뒤의 포트노이는 황당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직후에 결국 폭소를 터뜨렸다. 저 문장이 만석의 관중 앞에서 라이브로 터져 나왔다니. 그러나 웃음기가 가시기도 전에 포트노이의 시선은 베이스 앞에 서 있는 명에게로 향했다. 명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앰프의 웅웅거리는 진동 속에서 현을 가늠하던 손가락이 멈춰 있었다.

한국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온 명의 부모는 아들이 주류 사회에 동화되길 바라며 집 안에서조차 모국어를 금지했었다. 거친 기질을 억누르기 위해 어린 시절 턱 밑이 짓무르도록 바이올린을 켰고, 15세에 베이스를 잡은 뒤엔 부모의 반대를 꺾고자 피를 흘려가며 연습했다. 그 투쟁의 세월이 농담 한마디로 미개한 '정글 사나이의 일대기'로 전락했다.

연주를 끝낼 때까지 명은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 문이 닫히자, 명은 콜린스의 멱살을 움켜쥐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손끝이 튿어져 나가도록 베이스를 다루며 단련된 악력이 콜린스의 목을 틀어쥐었다.

"존, 진정해! 왜 이래!"

포트노이가 말리려 다가섰다. 하지만 평소 말수 적던 명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발을 멈췄다.

"다시는... 나와 내 가족을 조롱하지 마라."

콜린스는 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허우적거리다 굳어버렸다. 대기실의 침묵 속에서, 페트루치와 포트노이는 크리스 콜린스라는 조각이 마제스티에 맞물릴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물론 콜린스가 함께하던 시절 밴드에는 어설픈 사고나 살벌한 긴장만 가득했던 건 아니었다. 혈기왕성한 스무 살짜리들이 모인 지하실에는 고성과 멱살잡이만큼이나 엉뚱한 장난과 허튼소리도 넘쳐났다.

어느 날 합주실 구석에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명이 긴 머리카락을 얼굴 앞으로 늘어뜨린 채 베이스를 안고 불쑥 입을 열었다.

"이거 들어봐. 펭귄이 땅콩버터 젤리 샌드위치 사달라고 하는 소리야."

그러더니 지판 위에서 기묘한 음정의 프레이즈를 뚱뚱거렸다. 그리고 정말로 "저는 펭귄인데요, 땅콩버터 젤리 샌드위치 하나 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억양이 베이스 현 위에서 재현되었다. 멤버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합주실 구석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존재감을 지우고 있다가, 예고 없이 이런 폭탄을 터뜨리는 게 존 명이라는 사내였다. 콜린스가 배를 잡고 웃었고, 포트노이도 웃었다. 그 찰나의 순간만큼은 삭막했던 합주실에 모처럼 기분 좋은 온기가 돌았다. 하지만 그런 실없는 장난이 피워낸 가벼운 열기는, 이미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한 밴드의 균열을 녹여 메우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4. 약한 고리

연습이 끝난 포트노이의 지하실 밖. 균열은 눈에 보일 정도로 드러나 있었다. 페트루치, 명, 포트노이, 그리고 무어까지 네 멤버가 음악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차에 올라탈 때, 차가 없는 콜린스는 늘 누군가의 뒷자리에 구겨져 타야 했다. 어딘가 겉도는 콜린스의 침묵과, 멤버들의 피로감이 매번 부딪혔다.

스튜디오 대관료나 장비 유지비조차 버거워하는 그를 보며 나머지 넷은 결론을 내렸다. 밴드의 목소리를 교체해야 했다. 이들은 대학생이었던 앤드류 로스를 밴드의 첫 매니저로 영입했다. 그리고 앤드류는 밴드가 프로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먼저 끊어내야 할 고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1986년 11월, 마제스티가 탈라스의 오프닝 무대를 마친 날이었다. 관객들의 환호가 채 가시지 않은 공연장 뒷골목에서 앤드류가 콜린스를 불러냈다.

네 멤버는 밴 차량 주변에서 악기 케이스만 만지작거렸다. 앤드류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크리스, 오늘 무대는 정말 좋았어. 하지만... 팀의 방향성에 대해 멤버들과 긴 대화를 나눴어.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다."

변명을 늘어놓으려 할 때, 콜린스가 픽 웃으며 말을 가로챘다.

"앤드류, 길게 말 안 해도 돼. 사실 나도 한계였거든."

콜린스는 담배를 입에 물며 어두운 골목 끝을 응시했다.

"매일 진흙탕에서 구르다 와서, 또 연습해라, 연습해라 닦달 듣는 거... 솔직히 진저리가 나던 참이었어. 합주에 가고 싶지도 않은 날이 점점 많아졌고. 차라리 잘됐네."

미련 없이 낡은 짐가방을 챙겨 돌아선 콜린스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멀어졌다.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네 명은 밴드의 목소리를 제 손으로 버렸다는 현실 앞에서 승리감을 누리지 못했다. 시행착오 없이 '완벽한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는, 창단 이래 가장 큰 과제가 코 앞에 놓였다.


5. 서른다섯의 총잡이

콜린스가 떠난 뒤 마제스티의 시간은 1년 가까이 멈춰 섰다. 200개가 넘는 데모 테이프를 뒤지고 수십 번의 오디션을 열었다. 변화무쌍한 박자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도망치거나, 강박적일 정도로 까다로운 밴드의 요구에 혀를 내두르는 지원자가 부지기수였다. 여성 보컬까지 고려할 만큼 시간은 절박해지고 있었다.

그 무렵, 뉴욕 지역 신문에 실린 오디션 광고를 들여다보는 사내가 있었다. 서른다섯 살의 찰리 도미니치.

1950년대생인 그는 20대 초반의 멤버들과 달리 이미 서른 중반의 중년이었다. 그의 음악적 뿌리는 메탈이 아닌 60년대 포크와 70년대 로큰롤에 닿아 있었다.

60년대 후반, 열일곱의 나이에 듀오 '빌리 앤 찰스'로 덜컥 음반 계약을 따냈지만, 소속사의 얄팍한 상업주의에 환멸을 느껴 미련 없이 팀을 떠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그는 작은 난로와 침대가 딸린 낡은 폭스바겐 미니버스를 몰고 캘리포니아 해안가로 떠나 1년 내내 기타를 치며 노을을 보거나, 70년대 중반 우드스탁의 클럽들을 전전하며 낭만적인 자유분방함을 만끽했다.

그렇게 히피처럼 떠돌다 피가 끓던 80년대 초반, 밴드 '프랭크 앤 더 녹아웃'에 합류했던 시절에는 투어 중 호텔 4층 창밖으로 텔레비전을 집어 던져 박살 내고 투어 버스 뒷자리에 숨어 자는 척을 하던 다혈질 로커로 돌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청춘의 낭만과 록스타의 환상에서 모두 깨어난 지금, 그는 턱시도를 입고 주말마다 결혼식장에서 팝송을 부르는 처절한 생계형 웨딩 싱어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도미니치의 눈에 들어온 구인 광고는 당돌하다 못해 오만했다.

퀸스라이크의 제프 테이트나 아이언 메이든의 브루스 디킨슨 급의 초고음역대를 소화할 수 있어야 하며, 러시와 메탈리카를 뒤섞은 듯한 변박과 테크닉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네 클럽을 전전할 스무 살짜리들이 내걸기엔 터무니없이 높은 기준이었다. 심지어 오디션에 개인 PA 시스템(보컬용 음향 장비)까지 직접 챙겨오라는 요구 사항이 버젓이 적혀 있었다.

도미니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 새끼들, 허풍떠는 찐따들이거나, 아니면 진짜 천재들이거나 둘 중 하나겠군."

매니저를 통해 받아 들은 마제스티의 데모 테이프는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운명의 톱니바퀴는 롱아일랜드의 '포커스 뮤직' 악기점에서 맞물렸다. 매장에서 묵직한 베이스 케이스를 멘 존 명을 발견한 도미니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다짜고짜 명의 등 뒤로 다가가 마제스티의 데모 곡 'Your Majesty'의 도입부를 능청스럽게 흥얼거렸다.

"Do you need the walls to spread apart..."

밴드 외부인이 알 리 없는 선율이 낯선 아저씨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묵묵히 걷던 명의 발걸음이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찰리를 응시했다. 반가워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명은 특유의 무표정으로 그를 위아래로 한 번 훑었다. 그러더니 아무일 없었다는 듯 시선을 돌려 제 갈 길을 가버렸다.

이 기묘한 조우는 곧 포트노이와의 전화 통화로 이어졌다.

"오디션에 오려면 본인이 부를 개인용 PA 시스템을 직접 들고 오셔야 합니다."

도미니치는 입맛을 다셨다.

"이봐, 꼬마 친구. 내가 10대 애송이도 아니고, 생면부지의 남의 집 지하실에 그 무거운 쇳덩이 장비들을 낑낑대며 끌고 갈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고."

도미니치는 그렇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지만 밴드의 데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악적 매력을 외면하지 못했고, 몇 주 뒤 고집을 꺾은 그는 장비를 트렁크에 실은 채 포트노이의 지하실 문을 두드렸다.

1987년 9월. 앰프가 들어찬 지하실에 찰리 도미니치가 들어섰다. 21살의 비쩍 마른 청년들 앞에, 머리를 짧게 깎고 배가 살짝 나온 서른다섯 살의 아저씨가 나타난 것이다.

오디션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밴드는 크리스 콜린스의 날카로운 초고음역대 곡들을 요구했다. 찰리는 자신의 따뜻하고 묵직한 톤을 억누른 채 콜린스의 하이톤을 흉내 내려다 실수를 연발했다. 몇 번의 어색한 가창이 끝나고 지하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포트노이가 스틱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희가 나중에 따로 연락을 드리죠."

불합격 통보였다. 짐을 챙겨 돌아서면 끝날 일이었다. 도미니치가 짐을 싸려던 손을 멈추고 페트루치의 소매를 붙잡았다.

"잠깐만요. 남이 입던 옷에 날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지 말고, 아무도 불러본 적 없는, 멜로디도 없는 새 가사지를 하나 줘봐요. 내 식대로 해볼 테니까. 내가 진짜 누군지 보여줄게."

페트루치가 갓 써둔 신곡 'The Killing Hand'의 가사지를 건넸다. 반주가 시작됐고, 복잡하지만 아직 미완성인 곡조가 지하실을 채웠다. 도미니치는 단 한 번 연주를 듣고 즉석에서 멜로디를 창조하며 가사를 얹었다. 투어 생활과 라이브로 다져진 탄력 있는 목소리가 지하실에 울렸다. 콜린스의 날카로운 목청과는 다른, 연륜과 무게가 느껴지는 소리였다.

드럼을 치던 포트노이의 입이 벌어졌다. 지판만 응시하던 명의 고개도 슬쩍 들려 있었다. 이 아저씨는 분명 자신들의 복잡한 연주를 대중적인 언어로 번역해 낼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1년의 방황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깐깐한 포트노이는 그 후로도 도미니치가 일하는 결혼식장과 클럽을 몰래 찾아가 그의 무대 매너와 태도를 염탐하는 검증 과정을 거쳤다. 모든 검증이 끝난 후, 밴드는 합류를 통보하며 '수습직'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15년이나 어린 애송이들의 대우에 찰리는 헛웃음을 터뜨렸지만, 예술적 야망 앞에서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그릇이 큰 사내였다.

어린 천재들은 기술을 제공했고, 노련한 어른은 그 기술을 현실의 멜로디로 꿰매어 주었다. 밴드는 찰리 도미니치의 목소리를 앞세워 첫 정규 앨범을 향해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6. 마제스티 코드

새벽 2시, 롱아일랜드의 지하실.

페트루치와 포트노이가 다음 마디의 박자표를 분해하고 있었다. 구석의 소파에 파묻힌 도미니치는 수건으로 연신 얼굴을 닦아냈다. 이 천재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건축물은 경이로웠지만, 그 안에서 자신은 언제든 대체될 수도 있는 부품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도미니치는 빈 맥주병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가방에서 두꺼운 역사책을 꺼내 펼쳤다.

"얘들아, 잠깐 이것 좀 볼래? 앨범 계약도 다가오는데, 밴드 이름에 걸맞는 상징이 필요하잖아."

악보에 코를 박고 있던 페트루치와 포트노이의 시선이 모였다. 도미니치의 손가락이 가리킨 페이지에는 곡선으로 이루어진 문양이 인쇄되어 있었다.

"16세기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개인 문장(Royal Cipher)이야. 어때? 이 형태 자체가 '마제스티'의 첫 글자 'M'을 그리고 있잖아."

스틱을 만지작거리던 포트노이가 상체를 당겨 책을 들여다보았다.

"이거 미쳤는데. 단순한 M이 아니야. 그리스어 알파벳 파이(Φ), 뮤(Μ), 람다(Λ)가 중심축을 두고 대칭을 이루고 있어. 기하학적으로 완벽해."

페트루치도 고개를 끄덕였다. "클래식하면서도 우리 음악의 느낌과 맞아떨어져. 이걸 로고로 쓰자."

승인이 떨어지자 찰리는 웃으며 책을 덮었다. 밴드의 정체성인 로고를 자신의 손으로 세웠다는 사실에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며칠 뒤, 모두가 잠든 도미니치의 비좁은 자취방. 백열등 아래서 찰리는 자를 대고 펜을 쥔 채, 메리 여왕의 원본 문장을 밴드의 공식 로고로 다듬는 모눈종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문득 선을 따라가던 펜촉이 허공에서 멈췄다.

'언제까지 이 천재들 틈에서 버틸 수 있을까.'

생존 본능이었다. 살기 위해 결혼식장에서 점점 작아져가는 턱시도를 차려입고 노래를 부르며 전전하다, 결국 그럴싸한 밴드에 들어왔다. 단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고, 몸에 맞는 옷을 입었다고 느낀 적도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욕심이 났다. 더는 떠돌고 싶지 않았다. 낯선 사람을 만날 때마다 뭘 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인지 설명하며 쪼그라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15살이나 어린 녀석들은 자신을 보컬 라인을 얹어줄 수습직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 이 카르텔이 언젠가 자신을 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치고 올라왔다.

가만히 문양을 지켜보던 도미니치는 이윽고 펜을 고쳐 쥐었다. 원본 문장의 대칭을 미세하게 비틀기 시작했다.

파이(Φ)의 곡선을 끊어 알파벳 'C'와 'D'의 윤곽을 숨겼다. 람다(Λ)의 선분을 분해해 'I'와 'N'을 세웠고, 뮤(Μ)의 꺾이는 지점을 이어 붙여 'M'과 'O'의 형태를 욱여넣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교한 은닉. 선들을 분해하고 재조합하면 찰리 도미니치의 성, 'D, O, M, I, N, I, C, I' 스펠링이 나오도록.

"너희들이 이 밴드를 어디까지 끌고 가든."

찰리가 젖은 잉크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이 밴드가 존재하는 한, 내 이름은 이 엠블럼 안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거야."

밝아오는 새벽빛을 마주하며, 도미니치는 비밀을 숨겨둔 로고를 어루만졌다.


한이솔 씀
다음 편 바로가기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Post   list
File :
n19576r19889.jpg  (93 KB)    download :  3
n19586r72645.jpg  (98 KB)    download :  2
level 2 Scarred     2026-05-10 10:45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군요 문신까지 .. 너무 재밌게 잘봤습니다
NumberTitleNameDateHits
Notice타인의 평가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level 21 Eagles2012-07-2724182
Notice앨범 평가 시 평작을 70점으로 설정해 주세요.level 21 Eagles2009-09-1133160
Notice게시판 안내입니다.level 21 Eagles2004-01-1933838
33663강아지 샀습니다 [2]  level 20 앤더스4 h ago139
3366214. Brutal Truth - Need to control 앨범 감상  level 2 FrozenWorld5 h ago47
33661가사의 이미지화  level 19 Evil Dead11 h ago139
33660생각없이 듣기 좋은 Blutgott 신곡.level 17 나의 평화12 h ago54
33659Rhapsody 칠레 라이브 full. [4]level 17 나의 평화15 h ago171
33658ChRocktikal (크록티칼) ‘비둘기 (PEACE)’level 7 Lica16 h ago61
3365713. Die Apokalyptischen Reiter - Soft & stronger 앨범 감상 [2]  level 2 FrozenWorld2026-06-13120
33656이노래 첫부분 멜로디 유명한 멜로디인가요??level 8 씨리즈2026-06-13176
33655리프에서 불꽃이 튀는 [2]level 19 Evil Dead2026-06-13207
33654머틀리크루의 아성을 위협한 Poison [4]  level 20 앤더스2026-06-12277
33653Ratt 와 막걸리.. 허허 이것참.. [14]  level 20 앤더스2026-06-12330
33652The best of times 눈물나네요 [3]level 15 b1tc0!nguЯu2026-06-12350
33651[드림씨어터, 꿈의 기하학] 14장: 체계적 혼돈과 엇갈린 자아 (2007 - 2008) [2]  level 11 소설가H2026-06-11191
33650글램메탈 No. 1 Poison [6]  level 20 앤더스2026-06-11230
3364912. Bolt Thrower - Realm of chaos 앨범 감상 [4]  level 2 FrozenWorld2026-06-11225
336486월 14일 데스메탈 레전드 INCANTATION LIVE IN SEOUL 2026 with Asia Metal Festival 2026  level 1 ZPC65322026-06-11226
3364711. Deicide - Deicide 앨범 감상 [9]  level 2 FrozenWorld2026-06-10576
33646Evil Dead님 명반 나눔 감사합니다 [10]  level 16 rag9112026-06-09797
33645에반에센스 오사카 공연 예매 완료!  level 1 iamyoursh2026-06-09451
33644[드림씨어터, 꿈의 기하학] 13장: 옥타브의 완성, 거장의 반열 (2005 - 2006) [4]  level 11 소설가H2026-06-08432
336436일 sigh 공연... [4]level 9 바베크2026-06-08661
3364210. Godgory - Way beyond 앨범 감상  level 2 FrozenWorld2026-06-08398
33641잉베이, 건즈 내한공연 주최했던 8pm 파산... [8]level 8 Historian2026-06-08927
33640추억의명곡 Gamma Ray [6]level 6 sojuoneshot2026-06-08560
33639루카 랩소디가 활동을 하네요~~. [4]level 17 나의 평화2026-06-08584
33638비메탈] 사만사 폭스.. 영국의 자랑.. ? 왓!?  level 20 앤더스2026-06-07536
336379. Summoning - Dol guldur 앨범 감상 [6]  level 2 FrozenWorld2026-06-07515
33636Triosphere - Of Tyrantslevel 7 Lica2026-06-07369
33635인공지능 커버 영상 유튜버와의 페이스북 화상 채팅 대화 중 일부 발췌. [1]level 14 AlternativeMetal2026-06-07434
33634독일데스메탈 fleshcrawl [2]level 6 sojuoneshot2026-06-06411
33633낮술 & 메탈.. 궁극 [12]  level 20 앤더스2026-06-06722
33632Edu Falaschi 신곡 Unchained [2]level 15 b1tc0!nguЯu2026-06-06462
336318. Carcass - Swansong 앨범 감상 [16]  level 2 FrozenWorld2026-06-05645
33630일반 유저도 앨범이나 밴드 정보 수정 권한이 필요한듯 합니다. [13]level 15 GFFF2026-06-05652
33629AI 의 입장에서 AI 음악을 어떻게 생각? [7]level 19 Evil Dead2026-06-05574
33628EYEHATEGOD Vinyl Boxset  level 14 Spastic2026-06-05417
33627[드림씨어터, 꿈의 기하학] 12장: 분노의 열차, 질주하다 (2003 - 2004)  level 11 소설가H2026-06-04495
   
Info / Statistics
Artists : 53,784
Reviews : 12,085
Albums : 195,975
Lyrics : 229,381
Memo Box
view all
Blacksburg 2026-06-06 01:19
SIGH 내한 가시는 분들 너무 부럽습니다. 후기 많이 남겨주세요!
황금시대 2026-06-06 00:44
정당별 유불리를 떠나 선거 과정이 참 코미디같네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Spastic 2026-06-05 14:30
Alternative Metal: Disturbed don't hold up their values, David Drayman supported bombs to be dropped on kids :(
앤더스 2026-06-03 20:28
넥스트 도시인 이군요... 참 좋아하는 곡입니다 ^^
fosel 2026-06-03 20:21
신해철?
AlternativeMetal 2026-06-03 19:02
아무런 말 없이 어디로 가는가....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gusco75 2026-06-03 07:01
사전투표를 한 터라 본투표일인 오늘은 실컷 음악이나 들으면서 쉬어야겠네요.
fosel 2026-05-27 00:07
콜롬비아산 블랙메틀....
Evil Dead 2026-05-26 19:36
여전히 Inquisition 의 앨범들이 심각하게 좋은것을 보면 지옥행 확정.
황금시대 2026-05-26 18:36
7월 초중순에 해당하는 날씨가 5월 말에.. 2월달부터 3~4월에 해당하는 이상고온이 막 나타나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