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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level 11 소설가H
Date :  2026-06-0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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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씨어터, 꿈의 기하학] 12장: 분노의 열차, 질주하다 (2003 - 2004) by 한이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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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완전한 통제
12장: 분노의 열차, 질주하다 (2003 - 2004)

1. 강철 제련소

2002년의 끝자락, 유럽 투어의 밤. 밴드는 메탈리카뿐 아니라 또 다른 자신들의 메탈 유전자의 기원이 된 거장을 트리뷰트하며 관객의 허를 찔렀다. 아이언 메이든의 《The Number of the Beast》 앨범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연주하는 파격적인 커버 무대였다. 한때 브루스 디킨슨의 빈자리를 채울 수도 있었던 라브리에로서도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벤트였다.

스틱을 휘두르던 포트노이와 7현 기타를 멘 페트루치의 시선이 땀방울 흩날리는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치밀한 계산을 내려놓은 무대 위에는 아드레날린이 소용돌이쳤다. 미친 듯 몸을 부딪치며 슬램하는 관객을 내려다보며, 두 사람은 핏줄 깊은 곳에서 잠자던 '야수'가 깨어나는 느낌을 공유했다.

공연 직후, 대기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증기 기관차처럼 몸에서 허연 수증기를 뿜어내던 포트노이가 수건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이거야, 존! 다음 앨범은 진짜 '메탈'이야. 순도 백 프로의 무자비한 강철 사운드."

선언의 잔향이 대기실을 울렸다. 당시 2000년대 초반의 주류 씬은 림프 비즈킷이나 린킨 파크 등 랩과 턴테이블이 뒤섞인 '누메탈(Nu-metal)'이 장악하고 있었다. 정교한 기타 솔로는 낡은 유물로 치부되었고, 낮게 튜닝된 채 넘실대는 그루브만이 시장의 정답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포트노이는 그 유행을 거스르길 원했다. 어둡고, 빠르고, 기타 솔로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고전적인 메탈. 그건 시대 역행이 아니라 역사적 뿌리의 증명이었다. 메탈리카와 메이든이 벼려냈던 단단한 강철의 금자탑을, 절정의 기술력으로 극한까지 쌓아 올리겠다는 야망이었다.

그 날 선 열기는 해를 넘겨 2003년 초의 작곡 세션으로 옮겨붙었다. 헤드폰을 쓴 채 세밀하게 음표를 조각하던 기존 방식은 합주실 문밖으로 유폐되었다. 페트루치는 앰프의 볼륨 다이얼을 한계치인 '11'까지 올렸다. 진동이 스튜디오 창틀을 바르르 울릴 정도였다. 이들은 고막을 찢을 듯 타오르는 굉음 속에서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괴수를 창조해 내고 있었다.

차단된 밀실에서 네 명의 톱니바퀴는 무서운 속도로 맞물려 돌아갔다. 페트루치의 기타가 시종일관 쇳덩이를 짓이기며 전진하면, 포트노이의 드럼과 명의 베이스가 피스톤이 되어 지하를 융단폭격했다. 그 살벌한 울림 사이로, 루데스의 음침한 건반이 매연처럼 스며들어 공간을 장악했다.

맹렬한 잼 세션 속에서, 밴드는 단 3주 만에 가장 어둡고 헤비한 메탈 앨범의 뼈대를 구상하는 초기 작업을 마쳤다. 절정에 이른 창조력과 연주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 밤손님

금요일 밤, 맨해튼 로어 이스트사이드의 허름한 바.

카운터 한쪽에 앉은 알렉스가 맥주잔을 기울이며 건너편 구석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 사람 봐."

친구 둘이 고개를 돌렸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가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드럼 잡지 로고가 박힌 낡은 검은 티셔츠. 카운터에 팔꿈치를 괴고 느긋하게 TV 화면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어딘가 범상치 않았다.

"밴드 하는 사람 아냐, 저거?"

친구 중 하나인 브라이언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드러머였나? 베이시스트였나? 잘 모르겠어."

"10달러 걸어. 내가 가서 물어볼게."

알렉스가 맥주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 옆 빈 스툴에 자연스럽게 걸터앉으며 말을 걸었다.

"실례지만, 혹시 록밴드에서 연주하세요?"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놀라지도, 경계하지도 않는 표정이었다.

"응. 좀 해."

"어떤 밴드요?"

"드림씨어터라고. 들어봤어?"

알렉스의 눈이 커졌다. 동생 제이크가 드림씨어터의 광팬이었다. 작년 생일 선물로 뉴저지 공연 티켓 두 장을 사줬고, 형제가 나란히 앉아 세 시간짜리 공연을 봤다. 솔직히 알렉스 자신은 곡이 너무 길어서 중간에 졸았지만, 무대 위에서 드럼을 미친 듯이 두들기던 남자의 에너지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다. 수염이 덥수룩했고, 관객을 향해 스틱을 치켜들며 포효하던.

"잠깐, 그럼 당신 이름이…?"

"마이크 포트노이."

알렉스가 벌떡 일어나 친구들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이 분 진짜 밴드 하는 분이야! 드림씨어터!"

브라이언이 "뭐?" 하며 의자를 끌고 다가왔다.

맥주가 한 잔, 두 잔 오갔다. 포트노이는 느긋한 목소리로 밴드의 비화를 풀어놓았다. 《Metropolis Pt. 2》 녹음 당시 스튜디오에서 있었던 일, 페트루치가 특정 곡의 솔로 순서를 리허설 직전에 뒤바꾼 이유, 'The Dance of Eternity'의 박자가 중간에 바뀌게 된 배경 등. 드림씨어터를 잘 모르던 알렉스와 일행들마저도 이야기에 취해들 만큼 흥미로운 입담이었다.

알렉스가 핸드폰을 꺼내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곧 답장이 떴다. '형 뭔 소리야?' 알렉스가 다시 문자를 쳤다. '그냥 LP 중에 제일 아끼는 거 한 장만 들고 우리 동네로 와. 한 시간 안에.' 답장이 즉시 왔다. '미쳤어? 진짜?'

알렉스가 포트노이를 향해 몸을 숙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저희 집이 여기서 세 블록이거든요. 맥주 한 잔만 더 하시면서 잠깐만 들러주실 수 있을까요?"

흥분한 알렉스의 목소리가 간절해졌다.

"동생이 진짜 팬인데,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이 될 거예요. LP에 사인만 해주시고 사진 한 장 찍어주시면, 걔는 아마 울어버릴 거예요."

포트노이가 잠시 맥주잔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했다.

"가까우면 뭐. 잠시 그러지."

바에서 나온 두 사람은 새벽 거리를 걸었다. 3블록 떨어진 아파트 현관에서 알렉스가 도어락을 열고 포트노이를 안으로 안내했다.

작은 원룸이었다. 선반에 LP 몇 장이 꽂혀 있었고, 벽에는 메탈리카와 아이언 메이든의 포스터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포트노이가 소파에 앉았다. 알렉스가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며 말했다.

"동생이 30분이면 온다고 했어요. 좀만 기다려주시면…"

"천천히 해."

포트노이의 시선이 선반 위를 훑었다. LP 옆에 묵직한 은색 카메라가 놓여 있었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중형 필름 카메라였다. 무심한 듯 물었다.

"카메라 좋아 보이네. 사진 찍어?"

"아, 그건 부모님 거예요. 어머니가 사진을 엄청 좋아하셔서, 돌아가시기 전에 물려주신 건데… 꽤 비싼 거래요. 저는 사실 잘 몰라서 그냥 모셔두고만 있는데."

알렉스가 맥주를 건네고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동생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야, 지금 어디야? 빨리 와. 진짜라니까. 마이크 포트노이가 우리 집에 앉아 있다고."

포트노이의 눈치를 보며 전화를 끊은 알렉스가 양해를 구하는 미소를 지었다.

"죄송한데 화장실 좀…"

"응, 천천히."

화장실 문이 닫혔다. 수도꼭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포트노이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선반 앞으로 다가간 그는 은색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묵직했다. 카메라 옆에 놓여 있던 지갑도 집어 들었다. 이내 자기 뒷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현관으로 걸어간 그는 문을 열어놓은 채로, 유유히 계단을 내려갔다.

같은 수법이 몇 주째 반복되고 있었다.

바가 바뀌었다. 상대가 바뀌었다. 그러나 패턴은 똑같았다. 드럼 잡지 티셔츠, 덥수룩한 수염, 놀라울 만큼 정확한 밴드의 비화. 그리고 친해진 팬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챙겨 나오는 마무리. 남자는 포트노이의 이름을 대며 드럼 회사에 전화를 걸어 스네어 드럼과 하드웨어를 주문하기까지 했다.

어느 날 저녁, 첼시의 한 바. 뮤지션과 크루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벽면에는 사인이 적힌 기타 픽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었고, 카운터 뒤편에는 단골 밴드들의 포스터가 빼곡했다. 바 한쪽 구석에는 허름하지만 쓸 만한 드럼 킷이 세팅되어 있었다. 잼 나이트를 위해 갖춰둔 장비였다.

수염 기른 남자가 카운터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바에 들어선 몇몇이 그를 알아보았다.

"마이크? 마이크 포트노이 맞지?"

남자가 편하게 손을 들었다.

"오, 반가워."

한두 명이 악수를 청했다. 남자는 자연스럽게 응했다. 시선이 쏠렸다. 그때 입구에서 기타 케이스를 멘 장신의 사내가 들어왔다. 사바타지의 기타리스트 크리스 캐퍼리였다.

캐퍼리가 카운터 쪽을 보다가 걸음을 멈췄다.

"마이크?"

남자가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웃으며 손을 뻗었다.

"크리스! 오랜만이야. 요즘 사바타지 새 앨범은 잘 돼가?"

캐퍼리는 악수를 하면서도 어색함을 느꼈다. 상대는 자신을 정확히 알아보았고, 얼굴도 언뜻 닮았지만, 체형이 자신이 알던 포트노이와 미묘하게 달랐다. 살이 좀 찐건가? 목소리의 톤도 약간. 하지만 남자가 워낙 자연스럽게 밴드의 근황을 읊어대는 바람에, 캐퍼리는 일단 의심을 접었다.

"요즘은 새 앨범 작업에 집중하고 있어. 이번엔 진짜 프로그레시브하게 갈 거야, 크리스."

주변의 팬 한 명이 사진을 요청했다. 남자는 캐퍼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했다. 캐퍼리는 웃으면서도 속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맥주가 몇 잔 오간 뒤, 누군가 바 구석의 드럼 킷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마이크, 한 번만 쳐줘! 최고의 드러머가 여기 있는데 그냥 보낼 순 없지!"

환호가 터졌다. 캐퍼리도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합세했다.

"그래, 마이크. 솔로잉 한 번만 보여줘. 여기 킷 있잖아."

남자의 웃음이 찰나 멈칫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캐퍼리는 그 멈칫거림을 놓치지 않았다.

"아, 오늘 좀 컨디션이…"

"에이, 천하의 포트노이가 컨디션 핑계를 대? 딱 30초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남자는 드럼 킷 앞으로 걸어가 스툴에 앉았다. 스틱을 집어 들었다. 바 안이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그의 손끝에 쏠렸다.

스네어를 한 번 때렸다. 두 번 때렸다. 간단한 필인을 시도했다.

캐퍼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포트노이 특유의 터치. 스틱이 헤드를 때리고 반사되는 각도, 손목의 회전,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의 타격에 실리는 무게. 그건 함부로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앞의 남자가 스네어 위에서 만들어내는 소리는, 동네 취미반에서 석 달 배운 사람의 것이었다.

바 안이 어색하게 조용해졌다. 캐퍼리가 맥주잔을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드럼 킷 앞의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넌 마이크가 아냐."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바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남자가 스틱을 드럼 위에 내려놓고 스툴에서 일어섰다.

"아니, 그게… 오늘 손목이 좀 안 좋아서…"

"손목 문제가 아니야." 캐퍼리가 한 발 다가섰다. "마이크 포트노이는 눈을 감고 쳐도 너처럼 치진 않아. 너 누구야?"

남자는 대답 대신 재킷을 여미고 바 출구를 향해 빠르게 걸어 나갔다. 캐퍼리가 뒤를 쫓으려 했지만, 남자는 이미 거리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있었다.

캐퍼리의 제보와 드럼 회사의 신고가 겹치면서, 뉴욕 경찰은 사칭범의 윤곽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체포된 날이 하필 2003년 4월 1일이었다.

스튜디오에서는 앨범의 핵심이 될 11분짜리 인스트루멘털 대곡 'Stream of Consciousness'의 뼈대가 잼 세션 속에서 정교한 형태를 잡아가고 있었다. 페트루치의 리프가 루데스의 건반과 얽히며 곡의 중반부가 치솟는 순간, 스튜디오 문이 열렸다.

"마이크, 전화. 경찰서에서 왔는데."

포트노이는 스틱을 내려놓고 전화기를 받았다. 범인을 잡았으니 신원 확인을 위해 와달라는 말에, 그의 표정이 당혹에서 분노로, 분노에서 어이없음으로 바뀌었다.

"날 사칭하던 범인을 잡았다는데. 지금 당장 경찰서로 와달래."

하필 만우절이었다. 페트루치가 픽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물었다.

"…장난 아니고?"

"장난이면 좋겠어."

멤버들은 악기를 내려놓았다. 'Stream of Consciousness'의 절정에 해당할 구간이 유려하게 뽑혀 나오는 순간이었지만, 뉴욕 경찰은 잼 세션의 영감 따위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네 남자는 존 명의 차에 올라타 퀸즈 경찰서를 향해 출발했다.

경찰서에 도착한 포트노이 앞에 사칭범이 끌려 나왔다. 포트노이는 그 남자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슬쩍 포트노이가 스치듯 묻어있는 외모랄까. 그러나 포트노이의 눈에는 수염 말고는 일절 자기와 닮은 구석이 없었다.

"이 사람이 저를 사칭한 겁니다. 진짜는 접니다."

형사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서 작성이 시작되었고, 뒤에 서 있던 페트루치가 팔짱을 끼고 사칭범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드럼은 좀 칠 줄 아나?"

사칭범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서를 마치고 경찰서를 나선 네 사람은 명의 차에 올라탔다. 뒷좌석의 루데스가 문을 닫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 그 리프, 기억나지? 경찰서 가는 차 안에서 계속 머릿속으로 돌리고 있었어."

"나도." 페트루치가 말했다.

사칭범은 3년형을 선고받았고, 'Stream of Consciousness'는 그날 밤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만약 그자가 메탈리카의 라스 울리히를 사칭했다면 한 블록도 걷기 전에 붙잡혔을 것이고, 드림씨어터가 이름 없는 언더그라운드 밴드였다면 사칭할 이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몇 주째 뉴욕을 활보하고도 들통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야말로, 드림씨어터라는 밴드가 서 있는 오묘한 지위—어딜 가든 모두가 알아보는 글로벌 슈퍼스타는 아니지만, 어딜 가든 알아봐 줄 팬들이 곳곳에 숨어있는—를 보여주는 촌극이었다.


3. '내 모습 그대로'

2003년 여름, 롱아일랜드 코브 시티 스튜디오를 달구던 7집 녹음이 멈춰 섰다. 밴드의 오랜 우상이었던 퀸스라이크와의 합동 투어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프로그레시브 메탈 씬을 대표하는 신구 거물들의 화려한 만남 이면에는 서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갈등의 씨앗은 퀸스라이크 특유의 오만한 태도였다. 그들은 종종 "드림씨어터는 곡의 정서보다 기계적으로 많은 음표를 쏟아내는 데만 집착한다"며 은연중에 후배들을 깎아내리곤 했다.

이 시기에 누적된 앙금은 훗날 2006년, 프론트맨 제프 테이트(Geoff Tate)가 라디오 쇼 대기실에서 뉴욕의 유명 라디오 DJ 에디 트렁크와 프로레슬러 크리스 제리코를 앉혀두고 드림씨어터를 노골적으로 험담하다 발각되는 사건으로 폭발하게 된다. 하필 그 두 사람이 포트노이의 절친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저지른 촌극이었다. 크리스 제리코의 제보를 받은 포트노이는 인터넷 포럼에 테이트를 '두 얼굴의 쓰레기'이자 '제프 테인트(Geoff Taint)'라 조롱하며 지독한 공개 비난전을 벌였다.

하지만 2003년 투어의 한복판에서 밴드의 진정한 역린을 건드린 자는 따로 있었다. 퀸스라이크에 막 합류한 세션 기타리스트 마이크 스톤이었다.

합동 공연이 무르익어가던 어느 날, 좁은 백스테이지 복도에서 스톤이 페트루치에게 다가왔다. 까마득한 후배인 그는 허공에 기타 지판을 짚는 시늉을 하더니, 감히 페트루치에게 '기타 줄을 벤딩하는 요령'을 가르치려 들었다. 하루 12시간씩 굳은살이 찢어지도록 메트로놈과 사투를 벌이며 끝내 제국을 건설한 거장에게, 그건 선을 넘은 무례함이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이 존에게 노트를 구부리는 법을 가르치려 들어? 미친 건가?"

곁에 있던 포트노이가 핏대를 세우며 스톤의 멱살을 쥘 듯 날뛰었지만, 페트루치가 팔을 가로막았다. 페트루치는 굳게 다문 입술로 스톤을 응시했다. 반박하는 대신, 고개를 한 번 살짝 끄덕이고는 조용히 복도를 빠져나갔다.

그날 밤 모두가 잠든 투어 버스 안, 페트루치의 자리에만 옅은 독서등 불빛이 켜져 있었다.

낮에 삼켜냈던 모멸감이 펜촉을 뚫고 시커멓게 터져 나왔다.

'뭐가 유행인지 떠들지 마
내게 곡 쓰는 법을 가르치려 들지 마
이 싸움에서 이기는 법 따위 훈수 두지 마
네 인생이 아니잖아
네게 그럴 권리는 없어
내게 남은 유일한 걸 앗아갈 권리 말이야'

'오랜 세월 증명해 왔지
네 수준으론 도저히 이해 못 해'

'어떻게든 너희를
이해하고 정당화해 보려 애썼지만
결국 마지막엔 너희를 거부하고 맞서 싸울 거야'

'나를 이해하는 자들에겐
기꺼이 내 손을 내밀지 하지만
날 의심하는 자들에겐 똑똑히 요구하겠어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라고(Take me as I am)'

가사를 휘갈긴 페트루치는 구석에 세워둔 6현 기타의 케이스를 조심스레 열었다. 적막을 깨지 않기 위해, 앰프 대신 헤드폰이 연결된 작은 디지털 프로세서에 잭을 꽂았다.

헤드머신을 돌려 팽팽했던 기타 줄들을 풀기 시작했다. 가장 두꺼운 6번 줄이 'C' 음까지 내려가며 기괴하고 느슨한 텐션을 만들었다. 앰프를 거치지 않은 생줄의 건조하고 마찰음이 좁은 침실 칸에 낮게 깔렸다.

하지만 굳은살 박인 손가락으로 그 쇠줄을 내리치는 순간, 넥을 타고 전해지는 육중한 진동이 손바닥을 거쳐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7집 앨범의 포문을 열게 될 'As I Am'의 전주가, 모두가 잠든 밤의 정적 속에서 벼려지고 있었다.

4. 증오의 노래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생명 유지 장치의 비프음이 멸균된 병실을 울렸다. 2003년, 라브리에는 간이의자에 멍하니 웅크린 채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 끝에는 일곱 번째 생일을 사흘 앞두고 원인 불명의 발작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어린 딸 클로이가 누워 있었다. 라브리에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미동조차 없는 딸의 창백한 손을 감싸 쥐었다. 반짝이던 아이의 눈동자는 굳게 닫혔고, 간혹 눈꺼풀이 들릴 때조차 초점 없이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수만 관중을 호령하던 프론트맨의 기세도, 자연재해와 투어의 압박을 버텨낸 생존력도 이 비좁은 병실 안에서는 무의미했다. 무력감이 가슴팍을 눌러왔다.

라브리에는 가방에서 낡은 수첩과 펜을 꺼냈다. 어둠 속에서 아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처절한 애원이 페이지를 메웠다. 라브리에의 목소리와 첼로 선율의 이중창을 담은 처연한 트랙, 'Vacant'의 가사는 이 간이침대 위에서 조각되었다.

라브리에가 그렇게 심연을 헤매는 동안, 스튜디오에 남은 포트노이는 다른 의미에서 시커멓게 그을린 내면의 소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베이스 드럼을 믹싱 보드가 찢어질 때까지 올려!"

땀범벅이 된 포트노이가 방음 부스 안에서 베이스 드럼 페달을 마구 굴렀다. 스네어를 내리치는 악력에 굵은 나무 스틱의 끝이 톱밥처럼 부서져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포트노이는 전작부터 이어온 알코올 중독 고해성사의 연장선인 'This Dying Soul'에서 수치스러운 과거를 다시 꺼내놓았다. 거기에 더해, 암울했던 집안에서의 기억에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의붓아버지를 향해 평생 쌓아온 원망. 그 감정의 찌꺼기는 한 단어도 여과되지 않은 채 가사가 되어 쏟아졌다.

"존, 난 사랑 노래를 쓰는 데는 소질이 없어."

녹음을 마치고 부스를 나선 포트노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페트루치에게 씁쓸히 웃어 보였다.

"차라리 완벽한 '증오의 노래'를 쓰기로 했지. 전부 다 토해낼 거야."

머지않아 완성된 10분짜리 대곡의 제목은 'Honor Thy Father'로 붙여졌다. 누군가는 딸의 생사가 오가는 병실에서 피눈물로 쓴 슬픔을, 누군가는 평생을 짓눌러온 가족을 향한 시커먼 증오를 트랙 위에 던졌다.


5. 코끝의 마지막 음표

장장 11분에 달하는 연주곡 'Stream of Consciousness'의 리듬 트랙 녹음 현장. 포트노이, 페트루치, 명, 루데스는 하나의 회로로 묶인 기계 장치처럼 움직였다. 기하학적인 유니즌과 끝없이 쪼개지는 변박의 파도를 돌파하며, 네 사람은 자신들이 도달한 기술적 정점을 스튜디오의 공기에 찐득하게 새겨 넣었다. 하지만 이 지독한 완벽주의 이면에는 밴드 특유의 불경한 유머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녹음 전, 포트노이가 스튜디오 화이트보드 한가운데에 검은색 마커로 뭔가를 휘갈겼다.

[ S. O. C. ]

며칠 뒤 진행 상황을 점검하러 온 레이블 관계자들은 칠판을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학적인 기악곡인 만큼 제목이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일 거라 믿은 것이다. 방음문이 닫히고 관계자들이 사라지자, 포트노이와 페트루치는 동시에 킬킬거렸다.

그들만이 공유하는 세 글자의 진짜 의미는 "우리 꺼나 빨아라(Suck Our Cocks)"였다.

이들의 기행은 대미를 장식할 14분짜리 대곡 'In the Name of God'에서 정점을 찍었다. 종교적 광신을 비판하는 이 서사시의 후반부. 믹싱 보드 앞의 포트노이가 정확히 곡의 5분 51초 지점에서 손가락을 미세하게 놀렸다. 7현 기타와 베이스가 뿜어내는 육중한 굉음의 밑바닥에 일정한 간격의 타격음을 배열했다. 자신의 저급한 유행어인 "Eat my ass and balls"를 모스 부호로 변환해 트랙 한복판에 심어버린 것이다. 소리의 모든 층위를 장악한 폭군에게 허용된 장난질이었다.

기나긴 녹음 일정의 종착지. 스튜디오 카메라에 붉은 녹화 불빛이 켜지고,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할 웅장한 화음 하나만이 남았다.

신시사이저 앞에 앉은 루데스가 양손을 허공에 든 채 렌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은 그는 손가락을 등 뒤로 숨긴 채 상체를 깊숙이 숙여, 자신의 '코끝'으로 피아노 건반을 눌렀다. 루데스의 코끝이 빚어낸 진동은 한동안 스튜디오를 맴돌다 희미해졌다.

콘솔 앞에 선 페트루치가 마스터 테이프를 응시했다. 무대 위에서 폭발할 사운드의 질감을 가늠하던 그가 프로듀서 케빈 셜리를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케브, 사운드를 더 차갑고 날카롭게 깎아내 줘. 메탈리카보다 더 메탈리카처럼 말이야."


6. 손을 떠난 것들

2003년 11월 11일. 7집 앨범 《Train of Thought》가 공개됐다. 이 작품은 또 하나의 메탈 앨범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멤버들이 품은 불편하고 어두운 진실을 남김없이 배설하며 폭주하는 강철 기관차에 가까웠다. 상업적 타협은 없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프로그레시브 스래시 리프와 혼을 나가게 하는 변박의 향연에 평단과 팬들은 환호했다. 외부의 간섭 없이 자가발전된 에너지만으로 일궈낸 성과였다.

앨범 발매 직전, 포트노이는 익살스러운 장난 하나를 띄웠다. 자기 웹사이트에 'S.O.C.'라는 가제만 박힌 편곡 차트를 통째로 공개한 것이다. 'Crimson Setup', 'UK Rise', 'Straight Groove x2' — 멤버들이 작업실에서 키득거리며 붙인 섹션별 농담 같은 별칭들이 그대로 노출됐다. 곡의 진짜 제목도, 진짜 소리도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루데스가 직접 짠 MIDI 차트의 템포와 박자표만을 함께 풀어놓고, 전 세계의 팬들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이 차트만 보고, 당신이 생각하는 'S.O.C.'를 직접 만들어 보내라고. 54편의 곡이 지구 각지에서 날아들었다. 그중 일곱 편이 결승작으로 선정되어 팬클럽 한정 CD에 묶였고, 우승작은 이듬해 투어의 매 공연 시작 전 장내에 울려 퍼지게 되었다. 자신들이 도달한 정점의 기예를, 한 장의 차트로 분해해 팬들의 손에 통째로 쥐어 준 것. 그것은 자신감의 증명이자, 동시에 팬덤과의 거대한 공모였다.

여느 때와 같이 곧바로 월드 투어가 시작됐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의 투어 버스 라운지에서, 역시 여느 때와 같이 포트노이는 노트북 화면의 불빛을 맞으며 핏발 선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마우스 휠이 밴드의 모든 디테일이 얽힌 데이터 위를 빠르게 훑어 내렸다. 다음 날 연주할 세트리스트가 이전 투어 도시들과 겹치지 않는지 교차 검증하고, 팬클럽에서 올라온 요구사항을 읽어내며 투어 버스의 동선을 수정했다. 새로 제작할 투어 머천다이즈 티셔츠 로고의 미세한 폰트 크기까지 직접 살펴 결재를 내렸다. 포트노이의 숨 막히는 지휘 아래, 밴드는 작은 오차도 허락하지 않은 채 쉼 없이 회전하는 기계처럼 전진했다.

그러나 통제된 요새 밖의 세계는, 언제나 그렇듯 완벽한 계산을 비웃는 변수가 튀어나오곤 한다.

세인트루이스의 패전트 극장. 뜨거운 공연이 막을 내리고, 포트노이가 습관처럼 관객석을 향해 드럼 스틱을 높이 던졌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나무막대기의 궤적 끝, 2층 발코니석에서 9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의 취객이 이를 낚아채려 몸을 던졌다.

난간 너머로 중심을 잃은 그는 허우적거리며 1층 관객들 머리 위로 곤두박질쳤다.

무대 위에서 그 추락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포트노이의 온몸이 뻗뻗해졌다. 수백 명의 비명이 엉켜 드는 아수라장 속에서, 스틱이 빠져나간 자신의 빈손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모든 걸 움켜쥐고 휘두르려 해도, 일단 손을 떠난 것은 각자의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거액의 소송으로 투어 전체가 날아갈 뻔했던 이 촌극 이후, 포트노이는 무대에서 관객을 향해 스틱을 던지는 행위를 영원히 중단했다.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씁쓸함은 무대 아래를 넘어, 밴드의 오랜 역사 속으로도 그림자를 드리웠다.

투어의 열기가 절정에 달했던 2004년 3월 6일, 로스앤젤레스 판테지스 극장(Pantages Theater). 포트노이는 데뷔 앨범 《When Dream And Day Unite》의 발매 1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앨범 전체를 라이브로 완주하는 무대를 기획했다. 현재의 압도적인 기량으로 데뷔 시절의 설익은 곡들을 연주하는 감개무량한 이벤트였다.

앙코르 무대, 팬들의 환호 속에 반가운 얼굴들이 걸어 나왔다.

15년 전 밴드를 떠났던 전임 보컬 찰리 도미니치와, 90년대 중반의 혼란기를 함께 버틴 전임 키보디스트 데릭 셰리니언이었다. 현 멤버들과 옛 동료들이 무대 위에서 눈을 맞추며 뜨거운 연주를 쏟아냈다. 떠나간 이들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떠나보낸 이들도 그들을 인간적으로 져버리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무대였다. 밴드는 자신들의 모든 역사와 상처를 온전히 껴안았다.

하지만 그 환희의 한가운데서, 드럼 킷 뒤의 포트노이는 씁쓸함을 삼키고 있었다.

그는 이 무대를 위해, 데뷔 앨범의 핵심이자 유년 시절 죽마고우였던 케빈 무어에게 직접 합류를 제안했다. 불과 1년 전, 두 사람은 케빈의 사이드 프로젝트 OSI에서 함께 앨범을 만들기도 했다. 1994년 케빈이 드림씨어터를 떠난 뒤 흘러간 9년의 침묵을 깨고 다시 같은 스튜디오에서 드럼과 건반을 맞물린 시간이었다. 포트노이는 그 작업이 두 사람 사이의 다리를 다시 놓아주었다고 믿었다. 적어도 한쪽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케빈은 끝내 거절했다. 다른 프로젝트에서 함께 드럼을 치는 건 괜찮지만, 드림씨어터의 무대에 다시 서는 건 안 된다고. 단순한 거절이 아니었다. 선택적인 거리두기였다. 케빈에게 드림씨어터는 뒤에 두고 온 과거였고, 그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어떤 우정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영역이었다. 수천 명의 관중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무대. 그러나 그 경계선을 벗어나면, 얼마 전 함께 호흡을 맞추었던 옛 친구의 마음 하나도 뜻대로 할 수 없었다.

그 무력감은 포트노이를 손에 쥘 수 있는 것들에 더욱 집착하게 만들었다. 오직 자신의 통제 아래서만 조립되는 닫힌 세계. 그곳에서는 어떠한 어긋남도 마주할 필요가 없었다.

지축을 흔드는 함성 속에서, 포트노이는 입술을 깨물고 스네어의 림을 부서져라 내리찍었다. 통제할 수 없는 빈자리를 지워버리려는 듯, 타격은 점차 거세졌다. 남에게 운전대를 넘기는 법을 잊어버린 완벽주의자는, 오직 자신이 꽉 쥔 스틱의 감각에만 의지한 채 밴드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자기를 불태우며 질주하는 불나방이 비명을 토해낸다면, 아마 이런 소리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질주하는 이 강박적인 여정에도, 잠시 숨을 고를 만한 정거장은 있었다. 판테지스의 무대로부터 한 달 반 뒤, 밴드는 태평양을 건넜다. 도쿄에서, 한 번도 오른 적 없는 전당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7. 무도관

도쿄 지요다구, 기타노마루 공원의 숲 한가운데. 팔각형 지붕이 하늘을 향해 완만하게 솟아오른 건물 하나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일본 부도칸(Budokan). 본디 무도를 겨루기 위해 세워진 전당이었다.

1966년, 네 명의 영국 청년 비틀즈가 이 무술의 성전에서 기타를 울린 이래로, 부도칸은 다른 종류의 성지가 되었다. 딥 퍼플이 이곳의 공기를 깎아 《Made in Japan》을 새겼고, 밥 딜런이, 오지 오스본이 이 팔각의 지붕 아래에서 자신들의 실황을 영원에 박제했다. 부도칸에서 라이브 음반을 남긴다는 건, 말하자면 어떤 역사적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었다. 드림씨어터는 2004년 4월 26일, 그 명단에 자신들의 이름을 적어 넣기 위해 무대 뒤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카메라 수십 대가 객석과 무대의 모든 각도를 조준하고 있었다. 오늘 밤의 모든 음과 모든 땀방울이 DVD와 CD에 영구히 봉인될 예정이었다. 포트노이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래서 평소보다도 더 집요하게 무대를 점검했다. 케이블의 위치, 모니터의 밸런스, 조명의 큐 시트. 모든 톱니가 제자리에 맞물려 있었다.

객석의 불이 꺼졌다.

흑백 모노톤 속, 어딘가 불길한 석조 터널 아래 박혀 정면을 쏘아보는 거대한 눈동자. 그 주술 같은 《Train of Thought》 앨범 표지가 스크린을 채우고, 다섯 사람이 어둠을 밟고 무대에 올랐다. 'As I Am'의 불길한 도입부가 부도칸의 공기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페트루치의 7현 기타가 검은 쇳덩이 같은 리프를 내리꽂았고, 포트노이의 드럼이 그 위로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그런데 무대에 오른 지 몇 초 만에, 루데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건반 위의 화면에 떠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200여 개의 사운드 세트, 첫 곡부터 세 시간 뒤 마지막 곡까지 순서대로 그를 인도해야 할 그 신호 체계가, 통째로 엉뚱하게 바뀌어 있었다. 무대 위에서 그의 손은 갈 곳을 잃었다. 어느 건반을 눌러도 의도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수만 명이 지켜보고, 수십 대의 카메라가 돌아가는 한복판에서, 루데스는 연주를 멈추는 대신 연주하는 척하기로 했다. 손가락을 건반 위에 얹고, 곡의 흐름에 맞춰 그럴듯하게 움직였다. 실제로는 어떠한 소리도 울리지 않는 상태에서 그는 일종의 '마임'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 렌즈가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순간마다, 그는 재빨리 키보드 재부팅 버튼을 눌렀다. 다시. 또다시.

객석의 누구도, 화면 너머의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다만 'As I Am'의 선체가 궤도에 오를 무렵 그의 건반에서 비로소 소리가 돌아왔을 때, 카메라에 잡힌 그의 눈동자에는 옅은 안도가 한 줄기 스쳤다. 그 자신 말고는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참이었다.

무대는 멈추지 않고 흘렀다. 'This Dying Soul'의 분노가 쏟아졌고, 'Beyond This Life'가 열기가 폭주했다. 그리고 네 번째 곡의 차례가 왔다.

'Hollow Years'.

1997년, 4집 《Falling Into Infinity》. 레이블이 라디오와 차트의 틀에 넣고 밴드를 깎아내려던 시절의 대표곡. 그때 이 곡의 솔로 자리에는 절제된 나일론 기타의 선율이 놓였다. 부드럽고, 짧고, 얌전한. 누구의 심장을 박력 있게 움켜쥐기보다는, 아무도 거슬리지 않게 슬쩍 어루만지고 퇴장하는 솔로였다.

부도칸의 조명이 따뜻한 호박색으로 잦아들었다. 앨범에서와 같이, 감미롭고 쓸쓸한 정서가 피어올랐다. 라브리에의 목소리는 떠나간 사람들에 대해 노래했고, 객석은 그 서정에 몸을 맡겼다. 오프닝부터 연달아 몰아친 헤비한 디스토션의 폭주 끝에, 곤두섰던 감각이 잠시 쉬어 가기 딱 좋은 발라드 한 곡. 거기까지는 1997년의 그 곡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곡이 중반에 다다랐을 때, 페트루치의 손가락은 관객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원래는 나일론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했던 그 선율이, 일렉트릭 기타의 음색으로 옮겨 갔다. 어딘가 스페인풍의, 애수 어리고 구성진 숨결 속에 늘어지는 촉촉한 음표들. 비브라토가 음을 흔들었고, 그 떨림은 사람의 흐느낌 같았다. 음이 촘촘해지며 빠른 꾸밈음이 더해졌다. 원곡의 울림 위에 얹힌, 즉흥적 장식이었다.

그리고 익숙한, 그저 약간 변주됐을 뿐인 그 솔로가 마무리 되어야 할 타이밍.

별안간 포트노이가 지반을 다지듯 드럼을 쾅쾅쾅 때렸고, 곧바로 페트루치가 오른발로 페달을 세게 굴렀다. 이제껏 페트루치의 손아귀에 무력하게 붙들린 채 구슬프게 읊조리던 기타가, 일순 천장을 향해 절규하듯 울부짖었다. 페트루치의 왼손이 지판 위를 쓸어내리며 빠르게 뛰어올랐다.

그는 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약지와 중지가 함께 현을 위로 밀어 올리자, 가느다란 강철선이 활처럼 휘었고, 그 안에 갇힌 음정이 살갗째 끌려 올라가듯 비명을 냈다. 목표한 높이에 닿은 뒤에도 그의 손목은 아주 작게 떨렸다. 그 떨림 속에서 음은 무너지지 않고 버텼고, 마치 상실의 바닥에서 마지막 남은 숨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공중에 오래 매달렸다. 밴드 전원이 — 탬버린을 쥔 라브리에까지 — 그 폭발을 전력으로 떠받쳤다. 애수 어린 비가였던 'Hollow Years'는 이제 전혀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떠나간 이들에 대한 체념의 노래가, 그 상실을 뚫고 솟구치며 거대한 카타르시스의 불꽃으로 승화되고 있었다.

투어를 도는 내내, 페트루치는 이 곡이 세트리스트에 오를 때마다 이 부분을 조금씩 다르게 연주해 왔다. 어느 도시에서는 한 프레이즈를 버렸고, 다른 도시에서는 새 프레이즈를 끼워 넣었다. 수십 개의 밤에 걸쳐 깎이고 벼려진 조각들이, 부도칸의 역사적인 무대에서 마침내 하나의 완성된 형상으로 모여드는 순간이었다.

솔로가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페트루치의 손끝에서 음표들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어떤 이들의 눈에는 그저 기교의 과시로 보일 그 순간, 정작 그의 영혼은 고도로 숙련된 기예의 극한에서만 허락되는 어떤 자유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 영역에 다다른 자에게만 열리는, 예술적 영감의 창공. 그의 손끝이 틔워 낸 울부짖음은, 감정의 고양을 감각할 줄 아는 모든 이에게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옮길 수 없는 절정의 한순간을 고스란히 실어 날랐다.

탬버린을 흔들던 라브리에가 페트루치를 한 번 자랑스럽게 바라보고는, 미소 띤 얼굴로 마이크를 가져다 댔다.

"Mr. John Petrucci!"

부도칸의 천장이 함성으로 들썩였다.

마지막 음이 길게 울려 퍼지는 동안, 페트루치는 눈을 감고 있었다. 레이블도, 차트도, 라디오도 손댄 적 없는 소리였다. 한때 얼굴 없는 '대중'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 타협을 받아들였던 곡. 그 곡의 한복판에서 그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직 자기 방식의 극한을 쏟아냈고, 끝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해 보였다.

그것은 숱한 테이크를 거쳐 스튜디오에서 정련된 깔끔한 소리가 아니었다. 수많은 관중을 앞에 둔 역사적인 무대 위에서, 단 한 번의 호흡으로 터뜨린 연주였다. 전기가 흐르는 기타를 쥔 모든 이들의 가슴에 전설로 남을 그 2분이, 부도칸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새겨지고 있었다.


8. 유리 감옥 열차

무도관의 마지막 음이 잦아들고 객석의 불이 켜졌을 때, 다섯 사람은 자신들이 또 하나의 정거장을 통과했음을 알았다. 분명 더 넘어야 할 봉우리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정상의 윤곽은 이제 어렴풋이 손에 잡힐 듯했다.

그러나 그 충만함의 한복판에서, 마이크 포트노이는 다른 걸 보고 있었다.

무도관이 밴드 전체에 안긴 영광이었다면, 그해 늦가을 포트노이를 찾아온 것은 오롯이 그 한 사람을 향한 헌사였다. 2004년 늦가을, 포트노이는 빳빳한 광택지 위로 인쇄된 《모던 드러머(Modern Drummer)》 매거진을 펼친 채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페이지 한가운데에 굵은 활자가 박혀 있었다.

[ 마이크 포트노이, 2004년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헌액 ]

진 크루파, 버디 리치, 존 본햄. 그리고 그의 영원한 우상 닐 피어트까지. 타악기 역사의 성전에 이름을 새긴 거인들에게만 허락된 성소였다. 포트노이의 나이는 고작 서른일곱. 서른 살에 등재된 닐 피어트 이후 역대 두 번째 최연소 기록이었다.

모던 드러머 명예의 전당은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훈장이거나 사후에 바쳐지는 헌사로 여겨지는, 까마득히 높은 절벽과 같았다. 한창 피 끓는 현역인 포트노이가 이 이례적인 영광을 거머쥐었다는 것은, 평생을 바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기라성 같은 연주자들—딥 퍼플, 아이언 메이든, 블랙 사바스와 메탈리카의 심장들—이 늘어선 행렬을 단숨에 앞질러 맨 앞자리에 섰음을 의미했다.

한철에 그칠 인기투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드러머들에게 그의 터치가 하나의 '교본'으로 승인받았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잡지를 덮은 포트노이는 잠시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너머로 대기실의 땀 냄새와 웅웅거리는 이명, 그리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검토했던 밴드의 일정, 계산표, 투어 굿즈 도안, 세트리스트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산란했다.

드림씨어터에게는 아직 올라갈 곳이 남아있었지만, 정점의 윤곽은 이미 어렴풋이 보였다. 이대로 달리면 결국 꼭대기에 다다를 터였다. 하지만 계속 이 궤도 위로만 가야 하는 걸까. 한 번도 멈출 수는 없는 걸까. 잠시라도 멈췄을 때 무너져 내릴 제국이라면, 애초에 그건 모래성 위의 허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알 수 없는 이질감이 정수리를 짓눌렀다. 밴드 바깥에서 그는 어느새 드림씨어터가 갇혀있는 장르적 체급을 초월한 신화적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밴드 안에서의 그는 여전히 스스로 짊어진 강박에 묶여, 끝없이 잡다한 디테일을 통제하는 깐깐한 관리자에 가까웠다. 물론 드림씨어터는 바로 그 치열한 열정이 뼈를 깎아 세운 요새였다. 하지만 '포트노이'라는 이름값은 이미 그 성벽 너머로 무성하게 뻗어 나가고 있었다.

문득 숨이 턱 막혀왔다. 물리적으로는 어디에도 갇혀 있지 않았음에도, 분명 그랬다.

언젠가 록 페스티벌 대기실에서 마주쳤던, 후배 밴드들의 경외 어린 시선이 떠올랐다. 그들은 포트노이에게 다른 무엇도 기대하지 않았다. 오직 살아있는 전설, 스틱을 쥐는 것만으로도 무대를 장악하는 순수한 록스타로 우러러볼 뿐이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사는 삶에서 무대 위의 환상과 무대 뒤의 고독이 피할 수 없는 양면이라는 것쯤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 모든 걸 감수하고 끝을 보려 쉼 없이 달려온 여정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끝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뮤지션으로서 가장 찬란한 왕관을 머리에 쓴 바로 그 순간, 포트노이는 자신이 정해진 목적지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투명한 유리 감옥 열차에 결박되어 있는 것 같은 공황적인 불안에 사로잡혔다.


한이솔 씀
* 2004 부도칸 라이브 Hollow Years 4k 라이브 풀영상 (페트루치 솔로는 4분40초 부터)
* Stream of Consciousness 송라이팅 컨테스트 입상작 풀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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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sel 2026-07-19 18:22
주말은 또 이렇게 훌쩍 지나가는구나....
나단 2026-07-09 10:20
부락 2차 기대해도 좋으실듯합니다. 시티브레이크 이후 최고의 메탈페스티벌이 되겠네요.
fosel 2026-06-22 17:13
운영자분들의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 (_ _)
gusco75 2026-06-22 09:19
사이크가 원활히 잘 돌아가니 얼마나 좋은지~^^ Eagles 쥔장님 감사합니다~!!!
Spastic 2026-06-21 18:05
Huzzah metalkingdom is fixed!
Spastic 2026-06-20 21:35
I emailed Saint Eagles so hopefully he will restore site status since he hasn't be online on Metal Kingdom in like 8-9 days now lol
amoott 2026-06-18 10:39
싸이트가 매년 한두번씩 말썽..왜이러는지
Spastic 2026-06-15 23:26
I think the Eagles needs to promote this site more, I don't even remember how I found it lol but we need new users!
Blacksburg 2026-06-06 01:19
SIGH 내한 가시는 분들 너무 부럽습니다. 후기 많이 남겨주세요!
황금시대 2026-06-06 00:44
정당별 유불리를 떠나 선거 과정이 참 코미디같네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