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ream Theater, 꿈의 기하학] 에필로그: 영원한 내기 by 한이솔


흑요석 바닥 위로 1992년 가을의 시간선이 흘렀다. 창조자는 옥좌에 몸을 파묻은 채, 지상에서 갓 쏘아 올린 두 번째 앨범 《Images and Words》의 파동을 음미했다. 첫 앨범의 시행착오를 눈감아준 보람이 있었다. 기하학적 수식과 서정성이 마침내 오차 없이 맞물려 돌아가자, 절대자의 미간이 스르르 풀렸다.
그때, 충직한 신하가 헐레벌떡 궁전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그의 손에는 지상의 MTV 방송 기록과 빌보드 차트가 들려 있었다.
"전하! 기쁜 소식이옵니다! 전하께서 조립하신 그 기계들이 사고를 쳤사옵니다. 'Pull Me Under'라는 곡이 전 세계 라디오를 강타하며 돈을 쓸어 담고 있사옵니다!"
신하는 극찬을 기대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나 옥좌를 감싸던 평온한 공기는 일순 얼어붙었다.
"안 돼!"
창조자가 옥좌의 팔걸이를 짚고 벌떡 일어났다. 기쁨 대신 경악으로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전하? 어찌 그러시옵니까?"
"네놈은 생각이란 게 없느냐! 저놈들이 시작부터 돈방석에 앉아 배를 불리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느냐? 록스타의 나태함에 빠져 호화 저택에서 뒹굴며 더 이상 뼈를 깎아 새 곡을 쓰지 않을 터! 내 평생의 교향곡 자판기가 단숨에 고철 덩어리로 전락한단 말이다!"
창조자가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1992년의 궤도 위로 붉고 무거운 제약의 사슬이 겹겹이 얽혀 들었다.
"당장 밸브를 잠가라. 다시는 저런 대중적인 히트곡이 터지지 않도록 명줄을 비틀어버려."
신하가 당황하며 명부를 고쳐 쥐었다.
"그럼 단 한 곡만 히트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원 히트 원더'로 파멸시키라는 말씀이시옵니까?"
"아니지. 기계는 계속 돌아가야 해."
창조자가 턱을 쓰다듬으며 교묘한 족쇄를 설계했다.
"저들이 '위대한 히트곡 모음집(Greatest Hits)' 따위를 내고 평생 놀고먹는 꼴은 원천 봉쇄한다. 대신, 굶어 죽어 밴드가 깨지지는 않을 만큼, 딱 그만큼의 '컬트적 풍요'만 허락하라. 억만장자 슈퍼스타의 길은 막아두되, 평생토록 끝없이 작곡하고, 앨범을 내고, 투어를 돌아야만 밴드를 유지할 수 있는 지독한 록스타의 형벌을 씌우는 거다. 알겠느냐?"
스스로가 내린 명령에 만족했는지, 평정을 찾은 창조자는 이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궁전 안쪽으로 사라졌다. 텅 빈 흑요석 바닥 위에는 두 신하만이 남았다.
이윽고 무거운 정적을 깬 건, 차트를 들고 있던 충직한 신하의 등 뒤에서 들려온 짧은 혀 차는 소리였다.
"아무리 전하의 치밀한 설계라 해도, 저 계획은 명백한 실패로 끝날 겝니다."
매사에 삐딱한 시선을 던지던 회의적인 신하가 허공의 시간선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냉소했다. 그 말에 충직한 신하가 발끈하며 돌아섰다.
"그게 무슨 불경한 소리인가! 창조자께서 실패할 궤도를 짜셨단 말이냐?"
"인간이라는 종의 나약함을 무시한 처사니까요. 40년이 넘도록, 단 한 번의 공백기나 해체 선언 없이, 꾸준히 양질의 앨범을 내는 일. 그러면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적당히 유지한다? 그건 기적을 넘어선,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망상입니다."
충직한 신하가 미간을 좁혔다.
"정말 그게 불가능한 일인가? 전하께서 직접 빚어낸 피조물인데도?"
"인간이 모인 집단의 에고를 얕보지 마시지요." 회의적인 신하가 콧방귀를 뀌었다. "록의 역사를 통틀어 봐도 U2 정도나 예외일까. 40년이 넘도록 앨범 발매 간격이 5년을 넘긴 적 없고, 중단 선언이나 해체도 없으며, 주요 멤버가 죽거나 뛰쳐나가서 한동안 쓰레기 같은 앨범만 찍어내던 흑역사조차 없는 밴드는 그들이 유일합니다. 그런데 저들이 하는 '헤비메탈'이라는 장르에서는요? 단언컨대 단 한 팀도 불가능합니다."
"메탈을 하면 그게 그렇게 힘든가? 내가 그쪽 생태계는 잘 몰라서 그러네만."
회의적인 신하가 두루마리를 펼치며 팩트를 내리꽂았다.
"물론 메탈 씬에도 장수하는 놈들은 있지요. 하지만 그들은 40년 내내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똑같은 앨범만 기계처럼 찍어내거나, 아니면 대중은 이름조차 모르는 언더그라운드의 늪에 박혀서 '그들 만의 거장'으로 늙어가는 경우뿐입니다."
회의적인 신하를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전하께서는 지금 저 밴드에게 '슈퍼스타까지는 안되지만 전세계에 흩어진 매니아들의 사랑으로 결코 굶어 죽지는 않을 정도'라는 지독한 제한을 걸어두셨습니다. 그 '황금비'의 스트레스 속에서 여러 명의 천재들이 40년간 죽도록 일만 한다? 무조건 파국입니다. 전하께서도 깨달으실 겁니다."
회의적인 신하의 단언에 충직한 신하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이내 창조자를 향한 신뢰로 맞받아쳤다.
"아무리 그래도 전하가 설계한 톱니바퀴일세. 과연 안 될까? 나는 굴러간다에 걸겠네."
"오호라, 정 그렇다면 내기를 하실 텐가?"
회의적인 신하의 눈이 흥미롭게 반짝였다.
"좋지. 내기를 하세." 충직한 신하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단, 조건은 전하의 명대로네. 저 밴드, 드림씨어터가 해체나 휴지기, 활동 중단 단 한 번 없이, 전하의 기준에 미달하는 음반을 내는 단 한 번의 흑역사도 없이! 40년이 넘도록 끝없이 앨범을 내고 투어를 돌며 전하를 만족시킬 음악을 바친다면 내가 이기는 걸세. 아니라면 자네가 이기는 거고."
조건이 확정되자, 회의적인 신하가 참지 못하고 궁전이 떠나가라 폭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핫! 그러세. 이거 내가 거저 돈을 벌었구만."
회의적인 신하의 눈빛 깊은 곳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은밀한 비웃음이 스치고 있었다. 그가 속으로 생각했다.
'전하께서 저 드럼 치는 녀석에게 강박과 중독, 거기에 야성까지 섞어 넣으신 걸 잊었군. 장담하건대, 그놈은 결국 제 발로 뛰쳐나갈 거고, 그럼 밴드는 무너질 거야. 그날로 내기는 끝나는 셈이지.'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회의적인 신하는 충직한 신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자네는 보기보다 아둔하구먼. 인간이란 그렇게까지 신실할 수가 없는 법인데."
(끝)
한이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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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 Finale 군요 ㅠㅠ 이제 앞으로 무슨 낙으로 사나 모르겠네요 정말 재밌게 잘봤습니다 | ||
▶ [Dream Theater, 꿈의 기하학] 에필로그: 영원한 내기 by 한이솔 [1]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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