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두 메탈헤드 청년의 도전과 성공기 1편
메탈음악하면 자주 하는 드립으로 맨땅에 헤딩 드립을 자주 합니다.
메탈음악은 맨땅에 헤딩하는 음악이다라는 드립 참으로 많이 하고 많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맨땅에 헤딩이라고 하지만 성공한 사레는 거의 없다고 할 정도이고
맨날 척박한, 인기없는 드립을 치면서 하는게 메탈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런 메탈음악으로 성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독일의 두 메탈헤드 청년이 단순히 메탈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공연을 하고 싶다라는 열정하나만으로 아무것도 없는 시골깡촌 지역을 메탈의 성지로 바꾼 이야기.
메탈헤드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고 평생에 한 번은 가봐야할 곳
바로 지상 최대의 메탈 페스트 Wacken Open Air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9년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주에 있는 정말 한적하고 재미없는 동네 Wacken.
1,800여명의 작은 인구로 농사와 축산업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동네.
그런 재미없는 시골깡촌에서 메탈 커버 밴드Skyline의 베이스를 담당했던 토마스 옌센과 그의 절친한 친구 메탈 DJ를 하고 있던 훌거 휘브너
선술집에서 둘은 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갑자기 메탈전문 공연을 하고 싶다라는 의견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메탈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공연을 기획하기로 생각을 합니다. 공연을 어떻게 기획해야하는지 뭘 해야하는지 모르는 채 그냥 자기들이 하고 싶어하는 공연을 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일단 그들은 1990년도 8월에 공연을 하기로 생각하고 그때부터 무작정 공연기획을 공부하고 공연을 기획합니다. 하지만 돈도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젊은 몸뚱아리와 메탈정신 하나만으로 공연을 기획합니다.
공연하기 위한 부지를 먼저 섭외해야하는데,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자갈밭으로 되어 있는 땅을 임대합니다. 사실 그 땅은 독일 바이크 모임이 자주 모이는 지역이기도 하고 누가 쓰는 땅이 아니어서 재빠르게 행정기관에 가서 부지임대를 신고하고 계약을 해버립니다.
밴드는 지역 로컬 밴드들에게 섭외를 부탁했고, 다양한 지역 로컬 밴드들이 섭외가 되었습니다. 오프닝은 토마스 옌센이 활동하고 있는 밴드 Skyline이 맡기로 하고 페스티발 형태의 공연 기획을 준비합니다.
허나 돈도 없는 두 청년은 공연을 하기 위해서 무대설치팀이나 음향팀을 섭외할 수 없어서 대충 허접한 음향장비와 진짜 남루하고 비루한 무대를 직접 꾸미기 시작합니다. 페스트를 위한 홍보도 둘이서 낡은 중고 트럭을 타고 직접 독일 전역을 돌아다닙니다. 홍보 전단지를 붙이기도 하고 작은 클럽에 아무렇게나 찾아들어가서 홍보전단지 좀 붙이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하기도 하고 클럽에서 쫓겨나기도 부지기수.
티켓예매처는 어디 사무실도 없이 토마스 옌센 집 전화번호를 적어서 그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고 낡은 공책을 통해 직접 수기로 적어서 티켓 접수와 판매를 하고 우편으로 발송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예센의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무대설치와 음향 설치를 도와주기도 했었죠.
그리고 자신들만의 공연을 알리고 싶은 공연 로고가 필요했었죠. 토마스 옌센은 일러스트를 그리는 친구에게 부탁을 하게 됩니다. 메탈공연에 필요한 로고를 그려달라고. 친구는 30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서 그에게 황소머리 해골 일러스트를 하나 그려줍니다. 이렇게 Wacken Open Air를 상징하게 되는 첫 황소해골 로고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토마스 옌센과 훌거 휘브너의 노력으로 진행 1990년도 8월
대망의 Wacken Open Air 1990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두 청년의 온갖 노력으로 만들어 낸 첫 메탈 전문 페스트. 800여명이라는 대성과를 내고 나름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아무런 자본도 없이 대기업의 후원도 없이 오직 두 젊은 메탈헤드의 노력으로 첫 Wacken Open Air가 시작하게 됩니다.
이 기세로 이들은 1991년도 8월 23일과 24일 양일 간 진행되었던 Wacken
이 시기 처음으로 미국 밴드 Gypsy Kyss라는 밴드를 섭외하게 되었고, 첫 해 800명이라는 관중에서 1,300명이라는 관중이 늘어나게 되면서 토마스 옌센과 훌거 휘브너는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야 이거 진짜 제대로 하면 되겠는데?'라는 자신감을 말이죠. 그러나 두 번째 진행한 Wacken은 성공의 가도를 달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들은 슬슬 재정의 부담을 가지게 되고, 점차 2회차 만에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은 이것을 타개할 아주 획기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하고 진짜 말도 안되는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
다음 편에 계속


메탈음악은 맨땅에 헤딩하는 음악이다라는 드립 참으로 많이 하고 많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맨땅에 헤딩이라고 하지만 성공한 사레는 거의 없다고 할 정도이고
맨날 척박한, 인기없는 드립을 치면서 하는게 메탈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런 메탈음악으로 성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독일의 두 메탈헤드 청년이 단순히 메탈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공연을 하고 싶다라는 열정하나만으로 아무것도 없는 시골깡촌 지역을 메탈의 성지로 바꾼 이야기.
메탈헤드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고 평생에 한 번은 가봐야할 곳
바로 지상 최대의 메탈 페스트 Wacken Open Air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9년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주에 있는 정말 한적하고 재미없는 동네 Wacken.
1,800여명의 작은 인구로 농사와 축산업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동네.
그런 재미없는 시골깡촌에서 메탈 커버 밴드Skyline의 베이스를 담당했던 토마스 옌센과 그의 절친한 친구 메탈 DJ를 하고 있던 훌거 휘브너
선술집에서 둘은 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갑자기 메탈전문 공연을 하고 싶다라는 의견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메탈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공연을 기획하기로 생각을 합니다. 공연을 어떻게 기획해야하는지 뭘 해야하는지 모르는 채 그냥 자기들이 하고 싶어하는 공연을 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일단 그들은 1990년도 8월에 공연을 하기로 생각하고 그때부터 무작정 공연기획을 공부하고 공연을 기획합니다. 하지만 돈도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젊은 몸뚱아리와 메탈정신 하나만으로 공연을 기획합니다.
공연하기 위한 부지를 먼저 섭외해야하는데,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자갈밭으로 되어 있는 땅을 임대합니다. 사실 그 땅은 독일 바이크 모임이 자주 모이는 지역이기도 하고 누가 쓰는 땅이 아니어서 재빠르게 행정기관에 가서 부지임대를 신고하고 계약을 해버립니다.
밴드는 지역 로컬 밴드들에게 섭외를 부탁했고, 다양한 지역 로컬 밴드들이 섭외가 되었습니다. 오프닝은 토마스 옌센이 활동하고 있는 밴드 Skyline이 맡기로 하고 페스티발 형태의 공연 기획을 준비합니다.
허나 돈도 없는 두 청년은 공연을 하기 위해서 무대설치팀이나 음향팀을 섭외할 수 없어서 대충 허접한 음향장비와 진짜 남루하고 비루한 무대를 직접 꾸미기 시작합니다. 페스트를 위한 홍보도 둘이서 낡은 중고 트럭을 타고 직접 독일 전역을 돌아다닙니다. 홍보 전단지를 붙이기도 하고 작은 클럽에 아무렇게나 찾아들어가서 홍보전단지 좀 붙이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하기도 하고 클럽에서 쫓겨나기도 부지기수.
티켓예매처는 어디 사무실도 없이 토마스 옌센 집 전화번호를 적어서 그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고 낡은 공책을 통해 직접 수기로 적어서 티켓 접수와 판매를 하고 우편으로 발송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예센의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무대설치와 음향 설치를 도와주기도 했었죠.
그리고 자신들만의 공연을 알리고 싶은 공연 로고가 필요했었죠. 토마스 옌센은 일러스트를 그리는 친구에게 부탁을 하게 됩니다. 메탈공연에 필요한 로고를 그려달라고. 친구는 30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서 그에게 황소머리 해골 일러스트를 하나 그려줍니다. 이렇게 Wacken Open Air를 상징하게 되는 첫 황소해골 로고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토마스 옌센과 훌거 휘브너의 노력으로 진행 1990년도 8월
대망의 Wacken Open Air 1990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두 청년의 온갖 노력으로 만들어 낸 첫 메탈 전문 페스트. 800여명이라는 대성과를 내고 나름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아무런 자본도 없이 대기업의 후원도 없이 오직 두 젊은 메탈헤드의 노력으로 첫 Wacken Open Air가 시작하게 됩니다.
이 기세로 이들은 1991년도 8월 23일과 24일 양일 간 진행되었던 Wacken
이 시기 처음으로 미국 밴드 Gypsy Kyss라는 밴드를 섭외하게 되었고, 첫 해 800명이라는 관중에서 1,300명이라는 관중이 늘어나게 되면서 토마스 옌센과 훌거 휘브너는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야 이거 진짜 제대로 하면 되겠는데?'라는 자신감을 말이죠. 그러나 두 번째 진행한 Wacken은 성공의 가도를 달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들은 슬슬 재정의 부담을 가지게 되고, 점차 2회차 만에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은 이것을 타개할 아주 획기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하고 진짜 말도 안되는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
다음 편에 계속

Wacken Open Air 1990 첫 홍보 전단지

대망의 Wacken Open Air의 첫 무대

Wacken Open Air를 기획한 두 공동설립자
토마스 옌센(좌)과 훌거 휘브너(우)
토마스 옌센(좌)과 훌거 휘브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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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암울락 시절때 부터 올리신 많은 리뷰와 인터뷰 등등 봐온 사람 입니다. 허구한날 유투브 링크나 올리는 저질 맴버들과는 차원이 다른 여전히 클라시한 포스팅 감사합니다. | ||
타 회원님들을 저격하는 글은 보기 안 좋습니다. 유튜브 영상이나 음악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곳이 메킹입니다. | |||
아 그러세요 그럼 그렇게 공감 많이 하세요 그리고 전 특정인을 저격한것도 아니고 그저 그렇게 생각한다 라는 것인데 님의 지적 또한 저의 입장에선 보기 좋지 않네요. | |||
훌륭함을 칭찬하는 방법은 보다 못한 것들과 비교해 올려치는 것만 있는건 아닙니다. 훌륭한 포스팅에 그렇지 못한 댓글이네요. | |||
내로남불도 유분수지 들이대는 것도 참 야만 느끼하구나ㅋㅋㅋㅋ | |||
엄청납니다 | ||
다음 편이 너무 기다려집니다 +_+ | ||
다음편 빨리 올려주세요..!! | ||
앗 2편부터 봤었네ㅋㅋ 재밌습니다! | ||
잘 봤네요~^^ 다음 편도 이어서 봐야겠네요~ | ||
빠져들게 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 ||
잘읽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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